10년 걸리거나 30분만에 끝내거나…그에게 작업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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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후(64·사진)는 만물의 근원, 감각의 초월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작가다.
오는 31일까지 부산 기장군 빌라드 쥬 아난티 컬처클럽에서 열리는 길후 개인전 '불이'에서는 그의 구작과 신작 60여 점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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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부터 불교·불학 심취
- 수행처럼 긴 세월 고뇌한 작품
- 때론 즉흥으로 일필휘지 완성
- “억겁 세월이나 찰나나 똑같죠”
- 빌라드 쥬 아난티 개인전 ‘불이’
#1. 가로,세로 크기가 3m는 족히 될 듯한 캔버스가 온통 짙푸르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위에 빛이 만들어낸 문양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감각을 초월한 정신을 불러낸 듯하다.
#2. 이번엔 검디 검은 캔버스 위에 색의 조합이 춤을 춘다. 휘어졌다 싶으면 뻗어나가고, 뻗어나가다 갑자기 다시 꺾이는 붓질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때로는 ‘무언가’를 형상화 한 듯하지만 대부분은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
길 후(64·사진)는 만물의 근원, 감각의 초월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작가다. 2000년대 들어 깨달음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그는 자연스레 불교, 불학에 빠져 들었다.
이 시기 길 후 작가는 깨달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2010년 들어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 연작에서 그는 2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인물을 크게 내세운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인다. 그는 모델링 페이스트로 캔버스에 입체감을 얹은 후 원하는 질감과 형상이 완성될 때 까지 수행의 과정처럼 갈고 또 닦는다. 이 같은 그의 작업은 길게는 수 년간 이어진다. 길 후 작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도 걸린다. 한 작품 하다가 던져놓고 또 다른 작품을 하다 다시 돌아오곤 한다”며 “2012년 시작했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침묵’은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최근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의 조합이다. 역시 2m는 족히 넘을 듯한 대형 캔버스에 일필휘지로 색이 흩어지고 모인다. 깨달음을 주제로 한 그의 구작(舊作)이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면 ‘춤추는 피카소’로 이름 붙은 신작은 이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다.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1시간이 안 걸린다. 실제 붓을 들고 그리는 건 30분이면 족하다. 형상이나 색감에 나의 자아를 반영하지 않고 찰나의 감정을 표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춤추는 피카소’연작 대부분은 추상에 가깝지만 일부 작품에선 구상도 섞여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무엇을 보고 그렸다기 보다는 즉흥 속에서 탄생했다. 그는 “실패한 작품이었는데, 너무 다급해서 꽃을 하나 놨더니 멋지게 조화를 이뤘다”며 “내 의도에서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좋은 작품이 나온 것이다. 내 능력 밖의 무언가를 잡아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작품 제작 방식은 극과 극이지만 그 기저에는 모두 ‘정신 세계에 대한 탐구’가 깔려있다는 점(불이·不二)에서 일맥상통한다. 길 후 작가는 “억겁의 세월이나 찰나나 똑같은 것이다. 한 명의 작가 안에 두가지 모습이 다 있는 것”이라며 “64년을 살았지만 실제로는 찰나를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두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불교 경전 ‘유마경’에서 대립을 떠난 경지를 말하는 ‘불이’라는 개념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오는 31일까지 부산 기장군 빌라드 쥬 아난티 컬처클럽에서 열리는 길후 개인전 ‘불이’에서는 그의 구작과 신작 60여 점이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연필로 완성한 드로잉 작품과 더불어 설치 작품도 전시된다. 대부분이 사람 키를 넘기는 초대형 작품이어서 압도적인 미(美)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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