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소멸한 세계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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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2018)에서 보았듯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네오리얼리즘으로 표상되는 고전기 이탈리아 시네마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꾸밈없는 시골과 바다에서의 삶, 지중해의 문화적 전통은 이탈리아 영화의 큰 밑천이요 자산이 아닐 수 없는데,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안긴 '더 원더스'(2014)에서도 지역의 고유한 색채는 도저하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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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2018)에서 보았듯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네오리얼리즘으로 표상되는 고전기 이탈리아 시네마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꾸밈없는 시골과 바다에서의 삶, 지중해의 문화적 전통은 이탈리아 영화의 큰 밑천이요 자산이 아닐 수 없는데,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안긴 ‘더 원더스’(2014)에서도 지역의 고유한 색채는 도저하게 묻어난다.
감독이 줄곧 고집하는 16㎜ 필름의 고색창연한 질감은 현대 배경이지만 과거를 보는 것과 같은, 회화적이면서도 시간성이 증발해 버린 진공 세계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고 그러기에 한 소녀에게는 추억으로 살아있을, 감독 본인의 자전적 시공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에트루리아 문명이 ‘키메라’(2023)의 중심 소재였던 것처럼, ‘더 원더스’의 기본 이야기는 그 지역에 전해오는 오래된 동화의 변주로 보인다. 시골의 가난한 농부 가족은 큰딸의 노동에 기대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가장 역할을 떠맡은 큰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요정에게 도움을 청한다. 젤소미나(알렉산드라 마리아 룽구)와 TV 프로그램 ‘전원의 기적’ 진행자 밀리 카테나(모니카 벨루치)의 관계는 동화 구도와 정확히 포개진다. 외부 영향에서 단절된 채 살던 가족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딸은 지역농산물 경연에 참가해 상금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한다.
시칠리아 어촌 현실을 담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1948), 소작농의 험난한 삶을 급진적으로 다룬 에르만노 올미의 ’나막신 나무‘(1978)가 전반적인 내용과 형식을 결정지은 큰 바탕이라면, 여기에 페데리코 펠리니 후기작의 마술적 환상성이 덧대어진다. 뜬금없이 던져진 마당 한 가운데의 낙타는 ’아마코드‘(1973)의 눈 내리던 날 마을 광장에 출현한 공작을, 동굴에서 벌어지는 경연대회 시상식의 번들거리는 조명과 미술은 고대 로마의 방종과 타락상을 표현주의적 자유의 알리바이로 써먹은 ’사티리콘‘(1969)을 연상시킨다.
독일계 아버지는 도시화를 거부하고 종래 방식을 고집하는 완고한 시골 사나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에게 바깥에서 도래한 신문물의 화려함은 동경과 매혹으로 다가온다. 벌을 키우고 꿀을 얻는 걸 업으로 삼는, 엄격한 전통적 가부장제와 고된 노동의 척박하고 궁상맞은 현실이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로 포착한 네오리얼리즘 영역이라면, 로케이션 촬영지에서 신화 속 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밀리 카테라와 TV 프로그램 제작진의 상업적 마케팅은 머잖아 밀어닥쳐 지역을 잠식할 자본주의 물결, 풍요와 번영의 환상으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젤소미나는 살아온 터전 너머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서부극마저 떠올리게 하는 계승과 단절의 역사법칙이 있다. 젤소미나는 밀리 카테나의 가발을 건네받으며 상징적으로 자본주의와 도시화에 포섭되겠지만, 가업을 이어받을 아들이 없는 아버지의 촌 동네는 농약에 중독돼 죽은 벌처럼 소멸하고야 말 것이다. ‘더 원더스’의 심층에 깔린 정서는 지나간 한 시대의 멸망에 대한 쓸쓸한 회고, 그리고 깊은 애도(哀悼)이다. 언젠가 돌아가 품에 안길 수 있는 공동체의 자리,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떤 것의 세계는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를, 영화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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