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英 법원 ‘엘리엇 ISDS’ 취소 소송 각하, 한·미 FTA 해석에서 갈렸다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결과에 불복해 낸 취소 소송을 영국 법원이 각하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본지가 이날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영국 상사법원의 폭스턴 판사는 지난 1일 대한민국이 제기한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각하하면서 “한·미 FTA 조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하게 개입해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ISDS를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622억원과 지연 이자·법률 비용 등 총 13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이 소송을 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소송에서 “PCA는 이 사건에 대해 관할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상 ISDS 대상이 되려면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합병 동의를 정부 조치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을 PCA가 판정할 수 없다는 등의 논리였다.
그러나 영국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본안 판단 없이 사건을 각하했다. 폭스턴 판사는 특히 투자와 중재 청구 등을 규정한 한·미 FTA 협정문 11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석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협정문 11장 첫머리인 “이 장은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에 적용된다”는 문구가 같은 장 중반에 나오는 ‘중재 청구’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재 청구를 내려면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폭스턴 판사는 이 문구가 11장 1절에만 적용되고 2절에 나오는 ‘중재 청구’와는 관련 없다고 봤다. 폭스턴 판사는 “11장 1절(투자)은 실체적 조항이고, 11장 2절(투자와 국가간 분쟁 해결)은 절차적 조항으로 명확히 구분돼 있다”면서 “장의 시작 부분에 있는 ‘적용 범위’ 조항이 모든 조항의 전제가 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 해석을 8장, 9장, 12장 등 다른 장에 적용하면 자연스럽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고 했다.
폭스턴 판사는 또 당사자 간 중재 합의가 있었다면 관할권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한·미 FTA에는 “한국과 미국이 협정에 따라 중재 청구를 제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엘리엇이 한·미 FTA상 중재의 절차적 요건을 충족해 ISDS를 제기했다면 PCA가 이를 심리 및 판단할 수 있고, 따라서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관할권 문제는 영국 법원이 아닌 중재판정부가 판단할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일각에선 영국 법원의 판단이 메이슨과 한국 정부 간 ISDS 취소 소송을 심리 중인 싱가포르 법원에 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싱가포르 법원이 영국 중재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슨 측이 한·미 FTA 조항에 대한 영국 법원 판단을 참고 자료로 제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PCA는 지난 4월 “한국 정부가 메이슨에게 3200만달러(당시 약 438억원)를 물어주라”고 판정했는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엘리엇과 비슷한 사유로 취소소송을 낸 상태다.
법무부는 영국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편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물어줘야 할 비용에는 연 5%의 이자가 복리로 붙고 있다. 현재 매일 1만달러(약 1360만원) 이상의 이자가 붙는다고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울 중구 대형마트 주말에도 문 연다…서초·동대문 이어 서울 세번째
- 대구 성서산단 자동차 부품 공장서 큰 불…5시간 만에 진화
- 멜라니아, 백악관 상주 안 할 듯…“장소·방법 논의 중”
- 금산서 출근길 통근버스 충돌사고…22명 경상
- 트럼프, 이번엔 개인 변호사 법무차관 발탁
- 대기업 3분기 영업이익 34% 증가…반도체 살아나고 석유화학 침체 여전
- 손흥민 A매치 50골...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나라는?
- 홍명보호, 요르단·이라크 무승부로 승점 5 앞서며 독주 체제
- 한국, 1년 만 美 ‘환율 관찰 대상국’ 복귀...수출 늘어나며 흑자 커진 영향
- “김정은도 그를 못 이겨”... 이 응원가 주인공 황인범, 4연승 주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