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경기를 복식으로 바꾼 제멋대로 이진숙 [세상읽기]

한겨레 2024. 8.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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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위원이 지난 7월31일 취임 직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 방통위 제공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예전 같으면 빵과 와인 다음에는 자연스레 프랑스가 먼저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에게 빵과 와인은 새로 임명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식됐을 법하다. 원조 빵과 와인의 나라에서는 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이진숙의 빵과 와인 세계에서도 올림픽만큼이나 가슴 벅찬 기록의 향연이 펼쳐졌었다. 법인카드로 빵에 수백만원, 와인에 수천만원을 썼다는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그가 누구보다 이 정부가 하는 짓에 딱 들어맞는 방통위원장 후보였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올림픽 기록 세우듯 전광석화처럼 임명되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방통위에 출근하더니 당일 오후에는 다른 위원 한명과 단둘이서 전체회의를 열어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선임안을 의결했다. 대략 한시간의 회의를 통해 80명이 넘는 지원자를 살펴보고 이들 중에서 13명의 적임자를 찾아냈다고 하니, 가히 우사인 볼트를 능가하는 스피드에 금메달이라도 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방통위 전체회의 심의와 의결이라는 이 경기는 원래 5명이서 해야 하는 단체경기가 아니었던가? 이를 2명이 하는 복식경기로 마음대로 바꿔서 진행했으니 애초에 원인 무효가 아닐지 싶다. 게다가 우리가 못 본 사이에 초인적 스피드로 80명이 넘는 지원자를 온전히 심의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 모든 엉망진창 경기들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심판 판정이 있어야 한다. 비록 우리 사회 심판이라 할 수 있는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 수준은 처참한 지경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법원의 양심적 판결은 우리 사회를 더 망가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있었던 방통위의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해임 결정에 대한 행정법원의 집행정지 판정, 그리고 방송통심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문화방송에 내린 법정 제재를 대상으로 제기한 17건의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 모두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여전히 우리 민주 공화제의 중심에 사법적 정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이진숙 위원장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의결에 대해, 탈락한 지원자 중 일부와 현 방문진 이사들이 편법으로 진행되었던 선임 의결 절차의 결함을 지적하며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8월12일 현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이번 가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은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보다도 더 크게 우리 방송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행정조직에서 독임제 기구와 방통위와 같은 합의제 기구의 차이는 이전의 법원 판단에서 엿보이는 느슨한 인식보다도 사실 더욱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모든 행정조직은 그 구성 및 절차에 있어서 합목적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중에서 방통위는 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 조직의 본질적 목적이다. 이에 따르려면, 심의 및 의결 절차 역시 위원들의 실질적 합의가 가능하도록 적법하게 운영되어야 합의제 기구로서의 ‘합목적성의 원리’를 충족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논문이 합의제 행정기구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이 실질적 합의를 보장할 수 있도록, 내부 법적 규율의 수준을 좀 더 자세하게 명시하고 이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합의제 기구가 가진 합목적성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들은 애초에 합의제 기구를 최소 3인 이상의 결정을 위한 조직체로 규정하기도 하며, 합의제 기구에서는 위원장이 어떤 권한을 갖는지, 기피·제척 사유를 어떻게 규율하는지, 발의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의결정족수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위원들에게 사전 정보는 어떻게 제공되어야 하는지 등과 관련한 세부적 사안들이 필수적으로 규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빵과 와인에 빠져 흔들리기에는 우리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다. 이번에 다시 법원이 이 엉망진창의 방통위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올바른 결정을 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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