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집게손 괴롭힘’ 피해자 “부디 정의롭게 수사해주길”
“(경찰이) 이제라도 올바른 판단을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부디 가해자들이 합당한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정의롭게 수사해주길 바랍니다.”
‘넥슨 집게손’ 온라인 괴롭힘 피해자인 애니메이터 ㄱ씨는 8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서울 서초경찰서는 불송치(각하) 결정했던 그의 피해를 재수사하기로 했다. ‘과거 페미니스트에게 동조한 듯한 글을 게시한 적이 있음’을 각하 사유로 거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2차 가해”, “성차별적 수사”라는 비판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 역시 경찰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는 성평등을 이루고자 행동하는 사람인데, 그에 동조하는 것이 비판받을 만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앞서 문제가 된 ‘집게손’을 제가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경찰이 언급한 대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받은 건, 결국 제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라는 뜻이 되는 거잖아요.”
경찰은 그에게 욕설을 하며 퇴사를 부추기거나 심지어 사망을 원한다는 내용의 글을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이라고 봤다.
ㄱ씨의 일상이 갑작스레 무너진 건 지난해 11월 게임회사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영상 속 여성 캐릭터가 0.1초 동안 보인 손가락 모양이 남성 비하를 위한 ‘집게손’이라는 주장이 남성 이용자가 대다수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여성인 ㄱ씨가 이를 그렸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졌다. 해당 그림을 그린 애니메이터는 40대 남성으로 밝혀졌지만 인신공격과 성적 모욕 등 괴롭힘은 잦아들지 않았다. ㄱ씨가 과거 에스엔에스(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이유로 여성노동자의 에스엔에스를 찾아 페미니즘과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며 비난하고, 피해자를 옹호하는 사람까지 괴롭히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넥슨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용자들의 비난에 휩쓸려 ㄱ씨가 속한 외주업체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ㄱ씨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해달라는 고소를 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넥슨이 해당 영상을 비공개한 지난해 11월25일부터 올해 1월4일까지 그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덕수와 한국게임소비자협회가 수집한 괴롭힘 글만 최소 3500여건. 그 중 정도가 심한 글 308건을 추려 지난 5월16일(267건)과 6월14일(41건)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고 비난하는 글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작업을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쉽게 모욕하고 조롱하는 가해자들이 꼭 처벌받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를” 바랐다. 일상 회복을 위해 드디어 한 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온라인상의 익명 가해자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모욕하고 신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괴롭힌 행위가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쓰인 경찰의 수사결과 통지서를 받고 참담했다. 국가를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뒤집은 건 시민들의 연대였다. ‘엑스’(옛 트위터)를 중심으로 잘못된 수사 결과에 항의할 수 있는 사이트 주소를 정리한 게시글이 빠르게 공유됐다. ㄱ씨는 “저 혼자였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성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원하는 모든 페미니스트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익명성을 무기로 한) 가해자들의 범죄는 이제 ‘찻잔 속 태풍’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ㄱ씨는 온라인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뒤 그의 것으로 알려진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모두 닫았다. 우울증 치료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사람들을 피해 혼자 다니게 됐다. “조금만 (신상이) 드러나도 쫓아올까 봐 행동이 소극적으로 변해 예전만큼 잘 지내진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일상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랍니다.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성노동자를 타깃으로 한 부당한 집단행동을) 기업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ㄱ씨가 말한 일상 회복을 위한 조건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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