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칼럼] 금리 내려도 구조조정 못하면 재앙 맞는다

2024. 8. 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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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8월 2일 발표된 미국의 7월 비농업 일자리 수가 평균보다 적은 11만4000 개에 불과하고, 실업률도 4.3%로 상승했다. 미국 통화당국(Fed)의 금리 동결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미국 증시는 하락했다. 경기침체의 공포가 증시를 점령했다는 평이다. 미국에서 엔 캐리 거래를 하던 투자자들은 청산에 나섰다. 엔 캐리 청산으로 미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상승했다.

8월 5일 우리나라의 증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코스피는 8%, 코스닥은 11% 급락하면서, 2020년 3월 이후 4년 만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다음 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바로 반등했지만, 기술적인 반등으로 보인다. 경제 위기가 온 것도 아니고 단순히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나쁘다는 것만으로 세계 증시가 폭락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주가를 끌어 올릴만한 뚜렷한 호재도 없다. 향후 주가는 박스권을 형성하면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고용지표 악화는 경기침체의 신호로 읽혔다. 미국 증시가 반응했고, 이어서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유럽의 증시까지 핵폭발과 같은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유동성으로 끌어 올린 시장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고, 동시에 사람들이 그토록 외쳤던 금리 인하의 서막을 알리는 장송곡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는 주식 시장이 급락했다면 31%의 확률로 경미한 경기침체가 발생하며, 10%의 확률로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통화당국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1년 이상 언제 금리를 인하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금리 인하를 예견할 때마다 고용지표가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았다.

이제 더 이상 금리 인하를 막을 장애물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금리 인하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국채 금리는 이미 떨어져 있고, 경기침체를 알리는 다양한 지표들이 등장했다. 증시 관계자들은 미국의 통화당국이 긴급하게 금리를 낮출 확률이 높아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책 당국은 코로나 19 시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만들어 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을 시행 중이다. 돈을 풀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의 가격은 상승했으나, 경제가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갈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공급 요인과 수요 요인의 양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현상은 악화했다.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버블 형성과 붕괴, 금융시장 교란과 경기침체를 초래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정책 당국은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한다.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은 물가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것이다. 일단 올라간 물가가 더 올라가는 것을 용인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고통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 정책은 유동성으로 상승한 자산 가격의 폭락을 막고 자산 가격이 올라간 현 수준을 유지하려는 정책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부의 분배를 고착시킨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은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한다. 디스인플레이션 정책도 결과적으로 경기 후퇴를 가져오기 때문에 시간 벌기 정책에 불과하다. 디스인플레인션 정책이 성공하려면, 경제가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 동력을 다시 찾아야 한다.

디스인플레이션 정책을 쓰는 시기에 세계는 기후변화라는 신기루에 집착하면서 성장 동력을 찾는 데 실패했다. 공급망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고, 곡물 가격과 에너지 가격 급등을 유발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문제와 중동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AI도 아직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기는 미흡하다.

성장주에 관한 악재가 쏟아진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면서 고용은 줄어들고, 에너지 가격도 불안해지면서 경제는 침체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금 금리 인하를 통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자산 가격 정상화를 용인하고 구조조정 정책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정책 당국은 단기적 경기부양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는 인하될 것이지만 이제 재앙은 맞이할 차례다.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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