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국 자존심 살린 '20살 태권브이'… 첫 올림픽서 金 발차기
남자선수론 16년만에 쾌거
金 목에 걸고 "꿈 아니죠?"
준결승서 세계 1위 꺾고 포효
양발잡이 진화 '닥치고 공격'
체력·기술·멘탈 3박자 갖춰
올초 간판 장준 꺾고 파리행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생겨
이제 시작 올림픽3연패 목표"
결승상대 부축하는 매너까지
◆ 2024 파리올림픽 ◆
스무 살 국가대표 박태준(경희대)이 16년간 금맥이 끊어졌던 한국 남자 태권도를 구해냈다.
화끈한 발차기 공격과 대범한 경기 운영, 긍정적인 마인드와 쇼맨십, 매너까지 갖춘 태권청년에 파리 그랑팔레가 후끈 달아올랐다.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박태준은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기권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손태진, 차동민 이후 16년 만에 나온 한국 남자 태권도 금메달이었다. 남녀 통틀어서도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67㎏급 오혜리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해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다.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준은 코칭스태프, 취재진을 향해 연신 "이거 꿈 아니죠?"라며 활짝 웃었다. 이어 "금메달을 확정지었을 때 준비해온 모든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 순간 울컥했고 정말 좋았다"면서 "내 선수 인생의 모든 게 담긴 금메달"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선수를 시작한 박태준은 고교 시절 3년 동안 1개 대회를 제외하고 전국 대회를 모두 제패했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자랑했다. 19세였던 지난해 6월에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 '초신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박태준은 파리행 도전 과정에서 높은 산을 넘어야 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이 체급 금메달을 땄던 장준(한국가스공사)과 지난 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정면승부를 펼쳤다. 이전까지 장준을 상대로 6전 전패를 당했던 박태준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3전2승제로 치른 선발전에서 박태준은 2승을 거둬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이변'이라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처음 출전한 올림픽이지만 박태준은 전혀 주눅들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부터 일품이었다. 첫 경기인 16강전에서는 마치 격투 게임에서 보듯 연속 뒤돌려차기를 성공시켜 요한드리 그라나도(베네수엘라)를 라운드 점수 2대0으로 완파했다.
이어 8강에서 프랑스 신예 시리앙 라베를 2대1로 제압했고, 준결승에서 이 체급 세계 1위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를 2대0으로 돌려세웠다. 상대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세계 최정상급 상대와 마주쳐도 공격적인 경기 운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승에서 마고메도프를 상대한 박태준은 1라운드 경기 시작 6초 만에 발차기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를 압도했다. 1라운드 중반 경합 중에 무릎과 발목 사이 부상을 입은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박태준은 2라운드에서 돌려차기로 5점을 획득하는 등 공격을 이어갔다. 결국 부상으로 마고메도프가 더 이상 경기하기 힘들어지자 박태준은 금메달을 확정하고 기쁨을 만끽했다. 윙크를 하고 공중제비를 도는 세리머니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박태준을 고교 시절 지도한 전문희 한성고 태권도팀 총감독은 "태준이는 타고난 재능과 감각을 갖춘 선수다. 다른 선수의 영상을 보고 따라한 뒤에 자신만의 기술로 만든다"면서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알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지키는 게 박태준이다.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오른발잡이였던 박태준은 올해 초 선발전을 앞두고 왼발 공격도 익혀 양발잡이로 거듭났다. 전 감독은 "야구로 치면 투수가 오른손과 왼손 모두 사용해 공을 던지는 것과 같다. 양발 모두 사용하면 경우의 수가 많아져 상대 입장에서는 무척 까다롭게 여긴다"면서 "선발전 이후 완전한 양발잡이가 되면서 박태준은 체력과 기술, 감각까지 모두 갖춘 전천후 선수가 다됐다"고 칭찬했다.
박태준의 강한 멘탈도 큰 몫을 했다. 시상식 후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박태준은 "내 강점은 멘탈이다. 기술보다 멘탈을 강하게 다졌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너먼트 내내 틈틈이 보고 되뇐 문구가 담긴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6가지 내용이 담긴 글귀는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 이 또한 지나간다. 시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까짓 일로 죽기야 하겠냐'였다.
박태준은 "휴식 시간에도, 경기 직전에도 이걸 보면서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잘 될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 결과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전 선수 입장 때 무선 이어폰을 꽂고 등장한 장면도 화제였다. 박태준은 "신나는 템포의 팝송을 듣다가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여러 번 들었다. 한국 태권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었는데 그 말대로 됐다"며 웃어보였다. 전 감독은 "이번 결승전 10분 전에 태준이한테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고교 때는 긴장을 많이 하던 새가슴이었는데 지금은 강심장 선수가 다 됐다"고 말했다.
상대를 배려한 박태준의 매너도 주목받았다. 이날 자신과 상대하던 도중 다쳐 기권한 마고메도프의 몸 상태를 먼저 걱정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상식에서는 입장할 때부터 마고메도프를 부축하고 적극적으로 챙겨주면서 '금메달 품격'을 보여줬다. 상대가 다친 상황에서도 끝까지 공격해 일부 관중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박태준은 "상대가 포기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고 힘줘 말했다.
올림픽 데뷔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태준은 "한국에 돌아가면 마음 편하게 여행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롱런하는 선수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던 박태준은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는 물론 8년 뒤 브리즈번 대회까지 올림픽 3연패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각오를 드러냈다.
박태준은 "아직 한국 태권도에서 올림픽 3연패를 한 선수가 없었다. 이번 금메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오래 기억될 선수가 되기 위해 계속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파리 김지한 기자 / 서울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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