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요원 유출' 군무원 간첩죄 적용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가 '블랙 요원'의 신분을 비롯한 군사기밀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군무원 A씨를 간첩죄 혐의를 적용해 군검찰에 송치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간첩죄를 직접 적용함으로써 A씨가 북측과 직접 거래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7월 27일자 A1면 보도
8일 국방부는 "방첩사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군형법상 일반이적 및 간첩 혐의 등으로 정보사 군무원을 군검찰에 구속송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범죄 사실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이유로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A씨는 과거 정보사에서 군 간부로 첩보 활동을 했던 인물로, 군무원 신분으로 정보사에 재취업했다. 지난 6월 A씨가 블랙 요원의 본명과 활동 국가를 비롯해 전체 부대 현황 등이 담긴 기밀을 중국동포에게 넘긴 정황이 확인되면서 수사가 진행됐다. A씨는 정보사 내부 컴퓨터에 있던 보안 자료를 개인 노트북으로 옮겨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A씨는 북한에 노트북을 해킹당했다고 주장했다.
기밀정보 건네받은 중국동포, 北정보원에 무게
반세기 넘게 방치된 간첩법
국회는 이제야 법개정 추진
北처럼 명백한 적국 외에도
외국에 국가기밀 유출땐 적용
방첩사가 A씨에 대해 간첩죄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하면서 기밀을 넘겨받은 중국 동포가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이 커졌다.
형법과 군형법은 '적'(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게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이를 적용한 것은 북한과의 연계가 포착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라 간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려면 적국을 위해 국가 기밀이나 군사 기밀을 넘겨야 한다.
이처럼 현행 간첩죄는 적용 범위가 적국에 한정돼 있어 북한을 제외한 중국 등 외국에 대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형법(98조)은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사람, 군사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사람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군형법(13조)도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간첩을 방조한 사람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야는 군 첩보요원 신상 정보 유출 사건을 계기로 간첩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간첩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4건(장경태·강유정·박선원·위성락), 국민의힘 4건(주호영·인요한·임종득·김선교) 등 총 8건이 발의됐다. 이들 법안 중 4건은 A씨가 우리 군 첩보요원의 신상 정보 등 군사 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연이어 발의됐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간첩법 개정안 8건 모두 공통으로 간첩죄 적용 범위를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국제 정세 변화로 과거와 달리 적국 개념이 모호해졌고 적국이 아닌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군사 기밀을 유출한 경우도 간첩죄로 처벌하는 해외 기준에 준하게 간첩죄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첩법이 적용되려면 '기밀'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범위가 확대되더라도 기밀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로 간첩 혐의자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각종 개인 정보를 넘기더라도 국가 기밀이나 군사 기밀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법원에서 간첩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수사기관이 북한 측 지령에 따라 정보를 넘긴 피의자에 대해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2007년 북한 측 지령에 따라 군사기지를 촬영한 뒤 사진을 공개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놓은 간첩 혐의로 기소됐던 사진작가 이 모씨에 대해 법원은 "공개된 자료"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전지선과 접선하며 '암호 문건' 등을 통해 교신한 혐의를 받는 하 모씨에 대해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및 편의 제공) 혐의를 적용했다.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지령에 따라 국내 지역 정당 관련 정보를 수집해 전달한 '창원 자주통일민중전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김승환 법률사무소 GB 대표변호사는 "간첩법은 형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3년 규정된 이후 바뀐 적이 없다"며 "당시엔 진영이 명확하게 나뉘었지만, 현대에는 외교관계가 복잡해졌고 간첩 활동 수법이 다양해진 만큼 시대 흐름에 맞춰 대상 국가에 대한 범위 확대, 제재 대상이 되는 활동 범위 확대 등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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