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입법 합의로 협치 물꼬 텄지만…특검·거부권 등 난제 산적
'여야정 협의체'는 말만 무성한 채 삐걱…與 "조건없이 하자" 野 "영수회담 먼저"
野, '김건희' 명시 채상병특검법 재발의…與 "뒤통수칠 궁리만 하는 화전양면전술"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설승은 기자 = 여야가 비쟁점 민생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개원 후 두 달여 동안 정쟁만 일삼던 22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협치의 물꼬가 열렸다.
국민의힘 배준영·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8일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배제하는 '구하라법'과 진료지원(PA) 간호사 법제화를 담은 간호법 제정안 등의 8월 임시국회 처리에 뜻을 모았다.
전세사기특별법 등도 상임위 단계에서 여야가 의견 접근을 시도 중이다. 이달 중순 이후 본회의가 열리면 여야 첫 합의 처리 법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앞서 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특검법', '방송 4법', '전국민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7개 법안은 모두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여야가 이처럼 일부 법안의 합의 처리에 나선 것은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에도 정치권이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만 좇는다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다만 여야의 극한 대치로 얼어붙었던 정국이 단번에 '해빙 무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각자 정국 경색의 책임을 상대방에 돌리는 가운데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뇌관'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날 민주당이 재발의한 '채상병특검법'이 여야를 또다시 격랑 속으로 몰아넣을 태세다. 이번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이름을 못 박아 더욱 강도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했고, 앞서 폐기된 두 차례의 특검법처럼 '야당 단독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재표결·폐기'의 도돌이표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장동혁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에서는 휴전 협상에 나올 듯이 말해놓고 뒤로는 뒤통수칠 궁리만 하는 화전양면전술"이라며 "민주당이 경제 위기와 민생 해결에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이제라도 특검법에 대한 집착과 고집을 그만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특검법안 발의 후 기자들을 만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며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탄핵 사유"라고 주장했다.
방송 4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윤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둔 것을 비롯해 전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 역시 정부·여당의 반대에 부딪힌 터라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가 점쳐진다. 이들 법안이 국회로 돌아오면 여야는 또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정쟁 대신 민생을 챙기자면서 나란히 입을 모은 '여야정 협의체' 역시 구성 단계부터 각자 이견을 노출한 채 파열음만 내고 있다.
국민의힘은 조건 없이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재의요구(거부권) 행사 자제 및 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담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법을 자꾸 밀어붙이니 거부권이 행사되는 것"이라며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똑같이 하면 여야정 협의체를 할 뜻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의 '묻지마 거부권' 행사는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거부이자 독재 선언"이라며 "지금이라도 국회를 존중하고 민심을 경청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전 대표의 연임이 유력한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시작으로 협의체를 굴려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여야 당 대표가 먼저 만나는 게 순서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SBS 라디오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여야 당 대표 회담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정부 측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그때 여야와 대통령이 함께하는 회담도 한번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에게 "영수회담이라든가 대통령이 참여하는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서 법안, 예산과 국가 위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ge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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