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美양궁아재 말에 여의도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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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파리올림픽 양궁 개인 결승전은 '소름 끼치는 명승부'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한국 대표 김우진은 미국의 '양궁 아재' 브래디 엘리슨을 맞아 첫 세트를 27대29로 내주고 고전했다.
설사 이 승부에서 반대의 상황으로 4.9㎜ 차로 김우진 선수가 졌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엘리슨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 같다.
엘리슨은 "김우진과 나는 챔피언처럼 쐈고 그게 중요하다"며 "같은 시대에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상적인 경험"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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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답게 쏜 게 더 중요"
싸우는 과정의 가치 알아
韓국회 휘슬불어도 난투만
한번이라도 국민에 감동을
지난 4일 파리올림픽 양궁 개인 결승전은 '소름 끼치는 명승부'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한국 대표 김우진은 미국의 '양궁 아재' 브래디 엘리슨을 맞아 첫 세트를 27대29로 내주고 고전했다. 두 번째 세트에서 만회한 김우진은 세 번째 세트에서 역전을 허용했으나 네 번째 세트에서 기사회생해 동점을 만들며 마지막 세트에 돌입했다.
김우진과 엘리슨 모두 10점 만점을 쏘았다. 올림픽 양궁 역사상 전례 없는 접전이었다. 마지막 슛오프 상황이 이어졌다. 김우진은 9점과 10점 경계선 근처에 화살을 적중시켰고, 엘리슨의 화살 또한 비슷한 위치에 꽂혔다. 양쪽이 10점으로 인정받았지만 김우진의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불과 4.9㎜, 손톱 길이의 3분의 1 정도 더 가까워 금메달을 거머쥐게 됐다.
엘리슨은 승부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김우진에게 먼저 악수를 건넸다. 설사 이 승부에서 반대의 상황으로 4.9㎜ 차로 김우진 선수가 졌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엘리슨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 같다.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운 승부는 메달과 국경을 넘어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엘리슨의 시상식 인터뷰를 보고 그의 팬이 됐다. 엘리슨은 "김우진과 나는 챔피언처럼 쐈고 그게 중요하다"며 "같은 시대에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상적인 경험"이라고 극찬했다. 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면 이 인터뷰를 SNS에 올리고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정신"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겠다. 치열한 싸움이 끝난 뒤 적도 친구가 되는 판타지적 서사는 지금 현실 속에선 올림픽을 제외하고 찾아보기 힘든 시대다.
가끔 스포츠를 무기로 국가 간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을 진짜 전쟁처럼 착각하는 아둔한 정치인도 있다. 예컨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수들의 도핑을 묵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오로지 이기는 것에만 몰입하는 부류들은 월계관의 진짜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싸우냐는 것"이라는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이 남긴 그말 말이다.
올림픽 소식에 훈훈했던 기분이 저녁 뉴스만 보면 상한다. 우울한 정치권 뉴스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저 섬에선 도무지 끝이 안 나는 전쟁 같은 소식뿐이다. 야당은 며칠 전 국회 본회의에서 25만원 지원법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개원 두 달이 지난 22대 국회에서 야당의 본회의 법안 강행 처리는 벌써 여섯 번째, 탄핵안 발의는 일곱 번째였다.
곧이어 노조의 불법 파업에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도 상정됐다. 여당은 필리버스터에 돌입했으나 막을 수 없었고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청했다. 지난 두 달간 되풀이된 야당의 탄핵안·각종 법안 단독 강행 처리,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국회 재표결의 무한 루프다. 경제 상황은 증시 폭락과 티몬·위메프 사기 사건 속에서 위태위태한데 22대 국회에서 처리된 민생법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소득 없는 싸움질에 두 달간 낭비된 국회 예산이 1200억원에 달한다.
올림픽 국가대표들은 단 한 번의 감동을 위해 4년간 피와 땀, 눈물을 흘린다. 안세영 선수처럼 아픈 무릎을 싸매고 라켓을 쥔다. 그러고 보니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의 임기도 4년이다. 지금 우리 국회는 경기 끝을 알리는 휘슬을 국민이 불어도 집단적 증오로 귀가 먹어 듣지 않는 난투극의 모습이다. 4년 동안 단 한 번, 단 하루라도 국민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는 국회가 되어보길 바라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는 여름이다.
[이지용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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