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 35km 건설에 22년···'전력가뭄'에 첨단산단도 허덕

당진=배상윤 기자 2024. 8. 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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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키는 전력인프라]<3> 한국은 전력망 대란
당진~아산 공사 착공에만 14년
주민반대에 협력비 수백억 지급
지중화 예산 1500억 추가 투입
사업지연 탓 전력 병목현상 극심
새 지원체계·특별법 제정 시급
충남 당진 서해대교 인근의 천안 첨단산단 송전망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케이블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당진=배상윤 기자
[서울경제]

지난달 24일 충남 당진 서해대교 인근에 위치한 345㎸ 송전선로 건설 마무리 현장. 이곳에는 거대한 송전탑 2곳을 연결하는 지중케이블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다. 낮 기온이 32도를 넘어서는 무더위 속에 근로자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케이블 연결이 완료되면 첫 계획 입안 이후 22년이 걸린 송전망 설치 작업이 끝나게 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걸린 송전선로다. 한국전력의 한 관계자는 “2002년 계획했던 송전선로가 주민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내년에 준공된다”며 “충청권과 경기 남부 일대에 추가로 전기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당진의 북당진 변전소와 아산시 신탕정 변전소를 잇는 35㎞ 구간의 ‘천안 첨단산단 송전망’ 345㎸ 선로 공사는 국내 전력망 확충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2년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송전망 건설 사업이 반영됐지만 주민 반대와 각종 민원에 12년간 진척이 없었다. 송전선로 지역의 한 주민 대표는 “마을 주민들이 송전선로가 마을로 지나가면 암에 걸린다는 등의 이유로 해당 사업에 대한 반감이 컸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을 정도로 주민 설득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업 주체인 한전은 마을에 협력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주민 동의를 이끌어냈다. 한석 한국전력 중부건설본부 차장은 “특별지원사업비 명목으로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며 “주민 협상에만 12년이나 걸렸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역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를 압박해 한전은 당진시와 소송전까지 벌이게 됐다. 결국 주민 반대가 극심했던 신평면 구간(5.8㎞)은 지중화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추가로 소요된 재원만 1500억 원에 달한다.

주민들과 최종 타협이 이뤄지고 나서야 정부도 조건부 승인을 내줬다. 2015년 승인된 뒤 2017년 2월에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송전선로 설치 계획을 처음 발표(2002년)하고 15년 후에야 착공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당초 2003년 착공해 2012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착공만 14년가량 늦어졌다.

전력망 확충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인근 산업단지의 전력 수급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충남 천안·아산 일대는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이 집중된 지역이다. 아산 디스플레이 단지에는 330만 ㎡ 규모로 조성된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협력 업체 6곳이 자리해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은 전력 의존도가 다른 산업보다 최대 8배 높아서 안정적인 전력 설비 확보가 첨단산업 특화단지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열쇠로 손꼽힌다. 하지만 적기에 장거리 송전선로가 준공되지 못해 전력망 병목현상이 지금도 극심하다. 국내의 한 제조 업체 관계자는 “신규 전력수요 충당이 어려워지면서 신규 투자 계획의 불확실성도 올라갔다”며 “설비 증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져 기업 경영에 부담이 생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진 송전선 건설 사태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역 수용성을 높이는 협력 모델 마련과 거버넌스 구축 등 새로운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 업계에 따르면 국내 송·변전망 구축 사업은 당초 계획 대비 평균 3년 5개월, 최대 7년 6개월 지연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 학장은 “송전망이 제때 확충이 안 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전기요금 인상 등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정치권은 이미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전력망 특별 법안을 살펴보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기간전력망확충위원회 설치 방안이 담겼다. 위원회가 구성되면 중앙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신속하게 송전선로 건설을 진행할 수 있어 공정 기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다. 입지 선정과 사업 시행, 부지 매수 등 표본 공정을 한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앞장설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합리적 토지 보상 제도 등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전력망 확충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가 협업해서 주도권을 잡고 예산을 투입해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며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 첨단산업 육성 등을 위해 특별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진=배상윤 기자 prize_y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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