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해하려면 역사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8. 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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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해주' 출간 송호근 작가
'원조 김일성'으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김경천 삶 조명
日 육군사관학교 출신서
연해주 투사로 거듭난 인물
"사회학적 접근은 빈틈 많아
문학적 상상이 간극 메워"
독립운동가 김경천을 다룬 장편소설 '연해주'를 출간한 송호근 작가. 연합뉴스

북한은 김일성의 왕국이었고, 김일성은 풍문과 전승을 본인의 이름 세 글자에 덧씌워 신화가 됐다. '백마(白馬) 탄 김 장군'이란 이미지 역시 대표적인 조작 중 하나였다. 일본 황군을 추격하는 기마 투사로서의 초월적인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백마 탄 김 장군'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김경천 선생(1888~1942)이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벌였던 김경천 선생은 기마 공격에 능했기에 '조선의 나폴레옹'이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원조(元祖) 김일성'인 셈이다.

김경천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 '연해주'(나남 펴냄)가 출간됐다. 소설의 저자는 사회학자 송호근. 그는 석학 반열에 오른 학자로서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한 인간을 문장으로 부활시키는 작가적 시선을 유지해 이번 소설 '연해주'를 완성했다.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송호근 작가를 만났다.

"한 인간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접근으론 '축축한 빈틈'이 여럿 발견됩니다. 그런 빈틈일수록 더 큰 상상을 요구합니다. 역사적 뼈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한 인간의 고민을 응시하려 했습니다."

송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인 '연해주'에 진입하기 위해선 독립운동가 김경천의 '운명'에 대한 다소간의 복습이 필요하다. 김경천은 사실 황실유학생 자격을 가진 '일본 육군사관학교 장교'였다. 일본 체류 중 대한제국군 소속이었던 형 김성은이 사망하고, 2년 만에 아버지 김정우도 뒤를 따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김경천은 아버지와 형이 애국운동에 연루돼 죽은 건지를 두고 오래 고민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병가를 얻어 잠시 귀국했다가 회심(回心)한다. 1919년 탑골공원의 만세함성을 들어버린 것이다. 일본 육사 장교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일본에 투쟁하는 독립운동가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향한 복수, 그리고 시대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일본에의 복수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구한말의 무시무시한 음모와 외침, 점령과 저항의 소용돌이가 김경천이라는 인물의 내면에 얽혀 있는 거죠."

소설은 일본군 아베 미노 대위가 김경천에게 보낸 쪽지에서 시작된다.

소설 속의 아베는, 김경천의 일본 육사 생도 시절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그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준 친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김경천에게, 아베는 친구일 수 없다. 그는 '대한의 적'일 뿐이다. 적진의 친구가 몰래 보낸 단문의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퇴각해, 제발.'

"사회학은 '조망의 학문'이어서 인간을 추상화해 놓을 때가 많아요. 사회학은 개개인으로서의 인간을 형상화시키지 못하죠. 그걸 잘하는 사회학 영역이 인류학인데, 인류학은 또 전체를 아우르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어요. 인간의 삶을 재현하고 생생한 인물로 끄집어내는 건 결국 문학이에요.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를 택했습니다."

만주로 탈출하고 연해주로 건너간 김경천은 일본군을 궤멸시키는 고려의병대 사령관으로 추대된다. '백마 탄 김 장군' 이미지는 그 시기를 전후로 나왔다. 그런데 왜 김경천이었을까.

송 작가는 '황제의 시대'와 '시민의 시대' 중간에 선 인물이 김경천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고종 서거로 제권(帝權)이 무너지자 민권(民權)이 부상했습니다. 김경천은 자신이 본디 고종의 신하였음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고종이 죽으면서 민권을 인식했고 '자기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아가길 원했습니다. 일본 육군 소위임에도 존재론적 전환을 결단한 사람이죠."

송 작가는 오래전 김경천이 지나갔던 연해주 숲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의 경험이 김경천에 관한 360쪽짜리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그는 "그가 나를 데리고 연해주로 갔다"고 회고한다. "역사 속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역사의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가 처한 상황, 그가 해야만 했던 선택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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