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파리올림픽 골프 관전기-올림픽은 눈물을 만든다 [윤영호의 ‘골프, 시선의 확장’]

연제호 기자 2024. 8. 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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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르 골프 나쇼날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골프 남자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스코티 셰플러(가운데), 은메달을 차지한 영국 토미 플리트우드(왼쪽), 동메달을 차지한 마쓰야마 히데키가 메달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파리(프랑스) ㅣ AP 뉴시스
언더독의 승리는 다른 스포츠 경기보다 골프에서 자주 일어난다. 이름이 생소한 선수가 여러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골프에 행운이 더 많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 행운이 개입할수록 불공정해 보이고, 그런 종목은 인기를 잃지만, 골프의 인기는 예외다.

올림픽 챔피언 골퍼는 2016년 리우 올림픽의 저스틴 로즈와 박인비, 2021년 도코 올림픽의젠더 쇼플리와 넬리 코르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스카티 셰플러다. 실력과 태도에서 골프를 상징하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들이다. 올림픽 골프에서 언더독이 우승하지 않은 것이 코스 셋업 때문인지,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 기억 속 올림픽은 이번이 3번째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현대 스포츠인 골프가 오래동안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던 것은 의아하다. 1896년에 1회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을 때, 그리스에는 골프코스가 없었다. 1900년과 1904년 올림픽에는 골프가 올림픽에서 개최되었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로열 세인트조지, 로열 싱크포스와 프린스골프코스에서 6라운드로 치뤄질 계획이었지만, 참여 국가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경기의 프로화가 일찍 진행된 골프는 아마추어선수 위주인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프로선수의 올림픽 참여가 허용된 이후에도 골프는 여러 이유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지 못했다. 골프단체의 비협조도 있었지만, 종목 운영상이 어려움도 있었다. 연습 라운드까지 합치면 2주 내내 골프코스가 운용되어야 한다. 필요한 자원봉사자만 300명이 넘는다. TV 중계를 위해서는 메인 방송사 인력만 150명 이상 필요하고, 10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코스 전역에 전선과 통신선을 깔아야 한다. 두개의 개인 메달을 위해 너무 많은 전문 인력이 투입된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2016 리우올림픽에서 골프 남자부 금메달의 주인공은 영국의 저스틴 로즈(가운데)였다. 은메달은 스웨덴의 헨리크 스텐손(왼쪽)이, 동메달은 미국의 맷 쿠차가 메달을 나눠가졌다. 스포츠동아DB
올림픽 대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골프를 올림픽 종목에 넣으려는 움직임은 많았다. 최적의 타이밍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골프의 고향이었고, 골프대회 운영 경험이 많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단체와 프로선수들은 올림픽의 참된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112년만에 골프가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돌아왔을 때, 로리 맥길로이는 ‘나는 올림픽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고, 올림픽 골프를 관람하지도 않을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카바이러스의 유행이 불참의 핑계가 되었다.
박인비가 2016 리우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개인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두르고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리우올림픽에서 저스틴 로즈와 박인비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고 국기가 올라가고 국가가 연주되는 장면이 연출되자 골퍼들은 그 상황에 매료되었다. 2021년 도쿄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상위 랭커들이 참여했다. 잰더 쇼플리와 넬리 코르다의 우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스케줄을 바꿨고, PGA뿐만 아니라 LIV 선수들의 최대 관심도 올림픽 출전이 되었다.

파리 올림픽에서 첫날부터 지명도 있는 탑랭커들이 리더보드 상단을 장악했다. 다른 종목이라면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골프였기 때문에 특이했다. 골프코스의 셋업이 올림픽 직전에 개최된 디오픈과 완전히 달랐다. 페어웨이, 퍼스트컷, 세컨드컷과 러프의 구분이 확실했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물을 충분히 뿌려 페어웨이를 부드럽게 만들어 불규칙 바운스가 없도록 했다. 그린은 롱아이언 샷마저 잘 받아 주었고, 핀을 워터 헤저드 가까운 곳에 꼽아 놓았다. 좋은 샷은 보상을 받고 나쁜 샷은 징벌을 받도록 구성되었다. 행운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코스 셋업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거의 모든 탑 랭커들에게 메달의 기회가 있었다. 김주형, 로리 맥길로이, 잰더 쇼플리, 니꼴라이 호이가드, 존 람, 빅터페레즈, 히데키 마쑤야마, 토미 플릿우드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스카티 셰플러의 순위는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올라갔다. 셰플러에게 자리를 내주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른 선수들의 템포는 조금씩 느려졌다. 그렇게 세계랭킹 1위에게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영광이 돌아갔다.

스카티 셰플러가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르 골프 나쇼날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골프 남자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파리(프랑스) ㅣ AP
셰플러는 시상대에서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보였는데, 골프팬은 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마스터스에서 그린자켓을 입었을 때도 보이지 않은 반응이었다. 비로소 구원을 얻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골프대회의 가치는 더 올라갔다. 올림픽 메달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골프선수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올림픽 골프가 다른 대회에 비해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골프팬도 없어지게 되었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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