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수염과 함께 할리데이비슨은 다시 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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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염과 함께 계속 달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이하 할리)이 더 이상 젊은 소비자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제목을 단 기사를 보도했다. 199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이해 2000년대 중반 화려한 불꽃을 태웠던 ‘터프가이의 오토바이’가 터프가이들이 노쇠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할리의 상황은 좋지 않다. 2006년 34만4000대까지 팔렸던 오토바이가 지난해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6만2771대만 팔렸다. 같은 기간 회사의 주가 역시 절반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빠졌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셈이다. 흰 수염에 두건까지 쓴 가죽 재킷의 아저씨는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것일까. WEEKLY BIZ는 할리의 실적 발표회 녹취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실적 보고서 등을 분석해 할리의 현 상황을 파헤쳤다.
◇역시나 상황이 좋지 않다
2분기 실적으로 본 할리의 현 상황은 좋지 않다. 특히 판매 대수 면에서 계속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못 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할리의 판매 대수는 3% 줄어들었다. 남미 지역에서 지난해와 동등한 수준을 유지했을 뿐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 판매량이 감소했다. 특히 아시아에선 판매 대수가 16%나 줄었다. 요헨 자이츠 할리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회에서 “아시아에서의 판매 감소는 중국과 일부 동남아 시장의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아시아는 6분기 연속 성장세를 보이다가 최근 4분기 연속 역성장을 했다”며 “(이번 분기 판매량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하락세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상당한 성장을 보였던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판매량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재고가 쌓인다는 점이다. 오토바이는 팔리지 않을 경우 소매업자 격인 딜러에게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는데 이런 재고가 점차 늘고 있다. 올 2분기 기준 딜러 재고는 6만8000대로 전년 동기 4만6000대보다는 48%, 재작년 같은 기간 2만9000대보다는 134% 늘었다.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었던 2015~2019년의 2분기 평균 재고가 7만9000대여서 이보단 양호한 상황이라곤 하지만, 재고 문제는 현재 할리에 새로운 위험 요소란 해석이다.
◇‘선택과 집중’ 구조조정 나선다
할리가 자사의 판매 부진 상황을 방관만 한 건 아니다. 실제 이번 실적 발표를 보면 정량적인 지표는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2020년 취임한 후 이듬해부터 ‘하드와이어’라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 자이츠 CEO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자이츠 CEO는 입문용 모델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고급·대형 모델 라인인 투어링 바이크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할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장거리용 고급 모델을 강조하기로 한 것이다. 자이츠 CEO는 이런 고급 모델의 가격은 올리면서, 인력의 10%를 감원했다.
자이츠 CEO는 이번 실적 발표회에서도 이런 그의 구조조정 전략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2025년까지 구조조정의 ‘시즌 1′인 하드와이어를 진행하고 이후엔 ‘하드와이어 2′도 계획돼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전반적인 업계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배기량 601cc 이상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며 “투어링은 점유율이 5.3%포인트 상승하고 판매 대수도 11%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할리는 늙고 있지 않다
최근 들어 계속해서 지적받고 있는 소비자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할리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WSJ 등 일부 언론에서 1990년대 35세였던 할리의 평균 소비자가 이제 49세가 됐다고 지적하자, 할리의 소비자 평균 연령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반박한 것이다. 자이츠 CEO는 “신품 오토바이를 사는 고객의 평균 연령은 약 45세로 이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유지된 수치”라며 “특히 신규 고객의 평균 소득이 5년 전보다 15% 증가해 10만달러가 넘으며 고객의 전체 평균 연간 소득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고 말했다. 할리 제품이 고가(高價)라 저연령층의 구매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평균 나이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신규 유입이 지속된다는 신호로 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자이츠 CEO는 할리 소비층이 다른 브랜드보다 되레 젊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내 금융·서비스 부문 매출을 근거로 제시하며 “35세 이하가 전체 대출 건수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는 시장의 다른 브랜드보다 훨씬 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에도 올라탔다
할리는 이 밖에도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도 일찍이 뛰어들며 새로운 소비자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할리는 2015년이란 꽤 이른 시기에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도 올라탔다. 자이츠 CEO는 2021년 ‘라이브와이어’라는 할리의 전기 오토바이 브랜드를 아예 별도 법인으로 분리했고 이듬해 상장까지 시켰다.
이렇게 일찍 발을 들인 전기 오토바이 시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전히 영업이익 면에선 적자(2분기 2800만달러)지만,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12% 개선됐다. 미국 내에선 전기 오토바이 점유율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카림 도네즈 라이브와이어 CEO는 “라이브와이어의 상반기 실적은 전기 ‘자전거’ 부문인 스타사이크(StaCyC)의 매출 감소로 전년 대비 25% 줄었지만 상반기 동안 라이브와이어는 275대의 전기 오토바이를 팔았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자이츠 CEO도 “라이브와이어용 전기 오토바이 제조를 지원하기 위해 미 에너지부로부터 받은 8900만달러의 보조금도 강조하고 싶다”며 “이 지원금은 모든 오토바이 제조와 인력 교육을 지원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계속한다
특히 할리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대한 약속을 하며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흔히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 전략은 화사 측이 미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음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조너선 루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분기에 주주들에게 자본을 환원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1억2200만달러의 비용으로 자사주 290만주를 매입했다”며 “이로써 2024년 상반기에 매입한 할리 보통주는 총 550만주, 총 2억달러에 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26년까지 10억달러 규모의 주식을 재매입하는 새로운 계획도 있다”면서 “이는 전반적인 현금 흐름 창출 및 장기적인 수익 창출력을 강조하는 것이자, 2025년 말까지 15%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겠다는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이츠 CEO도 지난 32년간 연속으로 배당금 지급을 해왔다고 소개하며 “배당 정책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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