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반전드라마 ‘레지테아터’ 최전선...잘츠부르크·브레겐츠 가보니 [리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브레겐츠
달라진 건 또 있다. 원작은 숙적도 품는 절대군주 티토의 덕행을 찬양했다면, 21세기형 배반의 정치 드라마엔 영원한 건 없다. 오히려 안일한 통치자가 최후를 맞고 권모술수가 승리를 거두는 결말이 쓴웃음을 유발한다. 세계적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세스토 역)와 테너 다니엘 벨(티토 역)이 그려낸 인간적 고뇌도 현실 반영 그 자체였다. 1일(현지시간) 저녁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하우스에서 공개된 첫 무대에선 원작을 비튼 반전 결말에 놀라워하는 탄식과 기립 박수가 동시에 터졌다.
2일 오후 9시, 내리는 어둠 속에 마주한 호수 위 야외무대는 한여름 밤이란 게 믿기지 않게 눈과 얼음, 물로 뒤덮여 있었다. 불 뿜는 용과 지옥의 마차가 솟구치고 님프와 좀비가 뛰어다니는 등 흡사 서커스 쇼를 방불케 했다. 독일 전설을 반영한 원작엔 없는 풍경들이다. 원작에선 간접적으로만 등장하던 악마 자미엘이 이 작품에선 빨간 쫄쫄이를 입고 나와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해설자’ 역할을 맡았다.
세계적 오페라 축제들이 ‘레지테아터’로 현대 오페라의 가능성을 넓히는 중이다. 레지테아터는 독일어로 직역하면 ‘감독의 연극’이란 뜻. 수백 년 전 만들어진 고전 속 캐릭터를 변주하거나 시·공간을 옮겨 현실을 반영하는 연출법을 말한다. 관객에게 신선한 인상과 의외의 반전을 안긴다면 절반 이상의 성공인 셈이다. 세계 최대로 꼽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올해도 새로운 시각을 더한 오페라 작품들을 잇달아 무대에 올렸다.
美의사당 폭동 묘사 정치 드라마로 해석
세계적 메조 바르톨리, 동성애 연기 소화
권력·사랑·우정 앞에 갈등하는 고뇌 그려
그가 무대 위에서 풀어낸 음악과 연기도 ‘역시나’였다. 비텔리아를 향한 사랑, 티토와의 우정, 권력과 정의 앞에 느끼는 깊은 고뇌가 바르톨리의 숨소리에서마저 느껴졌다. 흐느낌도 노래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비텔리아와 여러 차례 키스하는 등 동성애 연기에도 거침없었다.
테너 다니엘 벨 역시 배신한 친구를 쳐내지 못하고, 숙적을 용서하고 마는 감정을 안정적인 아리아를 통해 잘 분출했다. 이밖에 세스토의 동생 세르비아 역 소프라노 멜리사 프티, 세스토의 친구이자 세르비아를 사랑하는 안니오 역 메조소프라노 안나 테르투아쉬빌리 등 모두 수준급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였다. 비텔리아 역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마셀러는 성량과 음색이 힘에 부치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었지만, 표독스러운 연기로 관객을 몰입하게 했다.
한여름 호수 위 눈·얼음 덮인 환상 세계
님프·좀비 등장해 서커스 방불케한 쇼
원작의 권선징악 교훈 뒤집은 풍자도
물과 눈, 얼음 등과 집·나무 등 섬세한 소품이 가득한 무대는 잔혹동화 세상 같다. 특히 무대 위엔 얕게는 정강이부터 최대 수심 2.5m, 농구코트 세 개를 붙인 것보다 넓은 총면적 1400m²의 인공 호수가 조성됐다. 배우와 가수들은 물속을 첨벙첨벙 걸으며 연기해야 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1945년 시작한 이래 유럽의 대표 여름 축제로 자리 잡았다. 상주인구 3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에 매일 7000명, 한 달간 20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든다. 호수 위에 각종 기술을 집약한 거대한 무대를 세우는 특성상 작품은 2년에 한 번씩 교체되며, 내년 축제까지 마탄의 사수가 올라갈 예정이다. 앞서 2019~2020년 이 무대에 리골레토를 연출했던 필립 슈톨츨이 이번에도 자기 상상력을 보덴호 위에 풀어놨다. 국내에서 실황 영상을 만날 기회도 마련됐다. 10일 오후 2시 전국 9개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 상영관에서 자막과 함께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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