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반이민' 폭동에 맞불시위…"우리가 극단보다 많다"
밤새 이민센터 60곳 표적공격 예고에…보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영국에서 '이민정책 중단'을 명분으로 내건 집회가 경찰과 이민자들을 폭행하고 상점을 약탈하는 폭동 양상을 띠자 일반 시민들이 폭력 근절을 호소하며 맞불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의 기세에 놀란 극단주의자들은 결국 이민센터 공격 계획을 접어야 했다.
로이터 통신과 BBC 방송,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잉글랜드 수호연맹(EDL)을 비롯한 극우·인종주의 단체들은 7일(현지시간) 밤 영국 전역의 이민센터 60여곳을 공격하기로 했지만, 사전 배치된 6000여명의 경찰 병력과 이날 거리로 쏟아진 시민들에 가로막혔다.
이민센터는 영국 이민국이 공인한 법률회사로 외국인의 비자 신청 및 이민 수속 업무를 도와준다. 전날 극우단체가 소셜미디어 등지에서 공격을 모의한 것을 포착한 영국 변호사협회와 이민법실무자협회는 이민센터 60여곳이 공격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고, 경찰은 기동대원 6600명을 센터 주변에 배치했다.
8일째 이어진 극우단체의 횡포에 질린 영국 시민들은 이날 오후 런던과 브리스톨, 브라이튼, 버밍엄, 리버풀, 더비, 헤이스팅스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이민센터 주변 도로를 점령했다. 이들은 '인종주의와 싸우자' '극우를 막아라' '인종주의자와 난민을 교환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대체로 평화롭게 행진했다.
런던 광역경찰청은 이날 하루 런던 북부 월섬스토와 노스피흘리에서 경찰 추산 최대 1만명이 이 같은 맞불 시위에 참석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지나갔다고 BBC에 논평했다. 브리스톨에선 1500명이 거리를 매웠고, 브라이튼에선 2000명의 시민들이 이민센터를 둘러싸자 센터를 공격하려던 8명이 달아나기도 했다고 BBC는 전했다.
로이터는 맞불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동조합, 좌파단체, 반파시스트·인종주의 단체 소속부터 이번 폭동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이슬람 이민자들과 폭동에 놀란 백인 주민들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월섬스토 시위에 참여한 폐기물 수거원 스텟슨 매슈(64)는 이날 로이터에 "모든 사람은 항의할 권리가 있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폭동의 빌미가 된 사건은 지난달 29일 영국 머지사이드주(州) 리버풀의 해안마을 사우스포트에 자리한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발생했다. 당시 19세 소년이 휘두른 칼 6~9세 어린이 3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가 이슬람 이민자이며 범행 당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쳤다는 잘못된 정보가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확산했다.
사건 초기 경찰은 18세 미만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금지하는 법률에 따라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년이 이민자가 아닌 웨일스 태생이라는 점만 확인해 줬다. 그러자 극우단체에선 경찰이 이민자를 감싸고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됐고, 지난 1일 리버풀 법원은 예외적으로 소년의 이름을 공개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한 폭력집회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고, 2011년 런던에서 20대 흑인 남성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발생한 폭동 이후 13년 만에 최악의 폭동으로 비화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사우스포트의 이슬람 사원에 방화를 시도했고, 지난 4일 잉글랜드 로더럼에선 난민 신청자들이 머무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이번 폭동으로 전날까지 영국 전역에서 428명이 체포됐으며, 이 중 140여명이 기소됐다. 이날 사우스포트와 리버풀 법원에선 이번 폭동과 관련한 첫 재판이 열렸는데,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3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총장 출신인 키어 스타머 총리는 전날 취재진과 만나 치안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검경의 강경 대응에 힘을 보탰다. 안젤라 레이너 부총리는 이날 로더럼의 방화 호텔을 찾아 "폭동 참가자들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거리에 나와 경찰과 호텔을 공격하는 건 정당한 불만도 정치적 의사 표현도 아닌, 폭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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