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변호인'과 '서울의 봄' 그 사이 어딘가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4. 8. 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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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NEW

'행복의 나라'로가 또 한 편의 에듀테인먼트 흥행 영화로 등극할 수 있을까? '행복의 나라'는 대통령 암살사건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10.26 사건의 '재판'을 다룬 영화다. 10.26 사건을 주도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아닌 그의 수행비서관이자 유일한 현역 군인이었던 박흥주 대령을 모티프로 한 팩션.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의 뒷이야기들을 공부하는 에듀테인먼트 열풍을 일으킨 1000만 영화 '서울의 봄'과 접점이 있어 관객 입장에선 어떤 차별화를 보일지 궁금할 만하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인 10.26 사건은 이미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같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여러 차례 영상화된 이야기. 그러나 사건을 주도한 김재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나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부하 직원들의 이름은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행복의 나라'는 그 중 유일한 현역 군인이라 군사재판에서 단심제로 16일 만에 졸속 재판으로 사형당한 박흥주 대령에 주목,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인물 박태주(이선균)로 만들어냈다.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또한 당시 실존인물을 포함한 여러 명의 변호인단을 모티프로 한 상상력으로 빚은 인물. 잘 알려진 역사의 뒤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법정은 옳고 그른 놈을 가리는 곳이 아니라 이기는 놈과 지는 놈을 가리는 곳'이란 신념을 가진 법정 개싸움 일인자 정인후.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 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대령의 변호를 맡게 된 그는 강직한 원칙주의자 박태주와 마찰을 빚는 동시에 재판이 실시간으로 도청되며 판사에게 대놓고 쪽지로 지시가 내려지는 불공정한 재판 과정에 분노를 터트린다. 재판에 공공연하게 쪽지로 개입하는 인물은 10.26 사건을 기점으로 정치적 야욕을 드러내는 권력의 중심인 합수단장 전상두(유재명). 영화는 정인후와 박태주, 그리고 전상두를 중심으로 법정극과 시대극, 그리고 역사에 얽힌 인간들의 서사를 진하게 전달하는 휴먼 드라마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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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극으로써 '행복의 나라'의 쟁점은 박태주의 행동이 대통령 살해에 동조해 국가전복을 꾀하는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군인의 본분에 따른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복종인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박태주는 줄곧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군인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사건 직후 육군참모총장을 동반한 차량에서 남산(중앙정보부)과 용산(육군본부)행 중 김 부장에게 용산행을 건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박태주에게 국가전복 의지가 없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거사 30분 전 들은 명령에 대해 자신의 판단이 깃들어 있음은 물론, 명령에 따라 세 명을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강직하고 청렴한, 군인다운 군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 살해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명령에 따랐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인물이 박태주이기에, 그에 대한 변호는 물론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또한 단선적일 수 없다. 

시대극으로써 '행복의 나라'는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의 시기를 지나되, 두 사건이 아닌 졸속으로 진행된 재판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서울의 봄' 같은 스펙터클한 장면이 아닌 당시 시대의 야만성에 집중한다. 무려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인데, 재판장에서 공공연하게 쪽지가 드나들며 첫 공판 후 16일 만에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니! 실제로 박태주의 모델인 박흥주 대령은 다른 가담자들이 3심 재판을 받고 있는 와중인 1980년 3월 6일 사형을 당한다. 내란죄 적용 유무는 차치하더라도 유례없는 과정과 속도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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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후와 박태주의 서사 관계로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도 제법 비중을 차지한다. 강직한 성품의 원칙주의자라 본의 아니게 가족들에게 시련을 안기는 박태주에 교회 목사로 시위하던 학생들을 숨겨주다 구속된 것으로 보이는 정인후의 아버지를 겹쳐 보이게 만들어, 옳고 그른 놈보다 이기고 지는 것에 더 몰두하던 정인후의 극적 변화를 꾀한다. 후반부 어떻게든 박태주를 살리고자 전상두를 대면하는 장면은 완벽한 상상에 의한 휴먼 드라마의 모습이다. 비슷한 궤로는 법정극이면서 시대의 야만성에 집중하며 휴먼 드라마의 감정을 적극 끌어안었던 '변호인'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다만 법정극과 시대극, 휴먼 드라마를 오가는 만큼 다뤄야 하는 이야기는 많은데, 중심축을 정하지 못해 중반 이후 이야기가 늘어지고 분산되는 느낌이다. 곳곳에 삽입된 웅장한 OST는 영화가 성급하게 신파를 자극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부산한 이야기와 부재한 핵심 메시지를 상쇄하는 건 배우들이다. 특히 여러 인물을 응축해 만든 상상의 인물 정인후를 연기한 조정석의 뜨거운 분투가 진하게 느껴지는데, 전상두를 대하며 등장하는 직선적인 대사들은 투박하고 촌스러워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지만 조정석 덕분에 어느 정도 반감된다. 전두환을 모티프로 한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의 연기엔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같은 인물인 '서울의 봄'의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과는 완연히 다른 결의 인물로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선균. 강직한 군인 박태주를 연기한 이선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상징성은 '행복의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슬픔이다. 고뇌에 차면서도 마지막을 예감한 덤덤한 박태주의 클로즈업 장면들은 관객에게 안타까움과 서글픔과 그리움을 동반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10.26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유족은 40년 만에 서울고법에 역사적 재평가와 복권을 희망하며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4월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 기일을 열었다. 이에 따라 영화의 소재가 된 박흥주 대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영화가 개봉하는 것. '서울의 봄'에 이어 MZ세대들이 역사를 공부하며 이 영화에 집중하게 될지는 8월 14일 이후 판가름 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작품이라 흥행에 대한 관심도 높다. 러닝타임 124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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