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높이려 中 배터리 쓰는 럭셔리 車… “배터리 이력제 필요” 목소리
수억원짜리 럭셔리 전기차를 판매하는 업체가 저가 중국산 배터리를 쓰면서도 소비자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어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고 생명과도 직결돼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차 3사를 비롯해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셰도 여러 차종에 중국산 배터리를 쓰고 있다. 업체들이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을 판매했을 때보다 이익이 적다. 연구개발(R&D), 생산시설 건설 등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데 아직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만큼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차 3사는 지난해 자동차 판매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었다.
또 완성차 제조사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상대적으로 싼 중국산 배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 완성차 업체, 수익성 하락에 中 배터리에 ‘러브콜’
이달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불이 난 벤츠 EQE 차량에는 중국 배터리 기업 ‘파라시스 에너지’(Farasis Energy 孚能科技) 제품이 탑재됐다. EQE에는 파라시스와 중국 CATL 배터리가 혼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벤츠 EQA, EQB에는 각각 SK온과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EQC는 LG에너지솔루션과 CATL, EQS에는 CATL 배터리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BMW IX1과 IX3, 포르셰 마칸 등은 중국 CATL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우디도 전기차 전용으로 개발한 ‘PPE 플랫폼’을 사용한 일부 차량에 CATL 배터리를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차 3사는 “배터리에 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벤츠가 세계 10위 규모인 파라시스 제품을 선택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 전기차는 2021년 고온 환경에서 장기간 빈번하게 급속 충전되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3만여 대를 리콜(recall·상품에 결함이 있을 때 생산 기업이 회수해 교환·수리하는 제도)한 바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하는 배경엔 수익성이 있다. 지난해 벤츠는 전년보다 58만대 늘어난 239만대를 판매했지만, 영업이익은 22억 유로 줄어든 197억 유로를 기록했다. 이익률도 14.6%에서 12.9%로 내려왔다.
아우디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76억 유로) 대비 17% 감소한 63억 유로에 그쳤다. 이익률도 12.2%에서 9%로 줄었다. 지난해 순수 전기차 판매가 74% 급증했던 BMW는 영업이익이 8% 줄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완성차 업체를 뚫고 있다”며 “CATL의 경우 1회 충전으로 최대 1000㎞를 갈 수 있는 배터리를 공개하는 등 기술과 품질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중국 배터리를 적용하는 차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커지는 전기차 공포… “배터리 이력제 도입해야”
벤츠가 2020년 파라시스 지분 3%를 인수했고 2022년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기 시작했다. 현재 벤츠 그룹은 지분 9.98%를 가진 중국 베이징차가 1대 주주이고, 2대 주주는 지리자동차의 리수푸 회장이 소유한 투자회사 TPIL로 9.69%를 들고 있다. 중국 자본이 벤츠 지분을 인수하면서 벤츠가 파라시스와 협력을 강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완성차 제조사들이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럽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2026년부터 배터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는 작년부터 배터리 생산부터 유통, 관리, 폐기, 사용후재활용까지 배터리의 생애주기를 데이터화하는 ‘배터리 이력’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국토부는 배터리 이력제에 앞서 제조사 공개 제도를 우선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한국에 차량을 판매하는 수입차의 한국 법인조차 차량에 어떤 배터리를 사용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전기차에서 배터리 비중이 크고 화재 사고 시 소비자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어느 제조사의 배터리를 사용했는지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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