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관객 키우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8. 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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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오페라 ‘슬기로운 아가씨’
줄거리 익히는 워크숍 3년째 운영
배우와 대화하고 노래도 따라불러
“프로그램 목적은 아이들의 기쁨”
202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어린이 오페라 ‘현명한 여인’(Die Kluge)의 한 장면. (c)Neumayr/Leopold
“왕이 당신의 아빠를 감옥에 가뒀어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어린이 오페라 ‘슬기로운 아가씨’(Die Kluge) 공연이 한창인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잘츠부르크 극장 안. 주인공인 아가씨 역할의 소프라노 마리 마이도프스키가 등장하자 객석의 한 어린이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극에 개입한 것이지만, 마이도프스키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옥 열쇠를 찾아야 해요. 도와줄래요?”라고 제안했고, 더 많은 아이들이 들뜬 목소리로 “네!”를 외쳤다. 내로라 하는 클래식 스타들로 붐비는 시내의 대축제극장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 떨어진 한적한 이곳, 비록 정원 2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이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꺄르르 웃음 소리가 가득했다.

이 작품은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독일 작곡가 카를 오르프가 대본을 써 1943년 초연됐다. 억울하게 왕실 감옥에 갇힌 아빠를 구하려는 여자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다. 주인공은 왕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 왕비의 자리에도 올랐다가, 조력자인 다른 여성 캐릭터 둘과 힘을 합쳐 악당과 왕을 따돌리고 아빠를 구출해낸다. 결국엔 왕도 잘못을 뉘우치고 화해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공연 시간은 비교적 짧은 90분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순한 권선징악 이야기 구조지만, 얕잡아 볼 만듦새는 아니다. 출연자 대부분이 페스티벌의 ‘젊은 가수들 프로젝트’(YSP)에서 선발된 차세대 오페라 가수들로, 안정적 실력을 뽐냈다. 15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보통 오페라 극장에선 무대 아래 숨겨진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지만, 이들은 무대 공간의 2층 즉 객석과 시선이 맞닿는 곳에 자리했다. 지휘자 안나 핸들러는 유려한 연주는 물론, 극중 왕이 호통 칠 때면 깜짝 놀라는 연기를 하는 등 남다른 존재감으로 극에 녹아들었다.

202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어린이 오페라 ‘현명한 여인’(Die Kluge)에서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배우들과 오케스트라. (c)Neumayr/Leopold
배우들은 관객과 직접 말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객석 계단에서 등장하기도 하는 등 어린 관객과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특히 극 후반부에 주인공 무리가 왕을 잠들게 하기 위해 마법의 약을 짓고 자장가를 부를 땐 아이들이 선율을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2024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어린이 오페라 ‘현명한 여인’(Die Kluge)의 한 장면. 주인공인 소프라노 마리 마이도프스키가 객석 계단을 통해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c)Neumayr/Leopold
아무리 간단한 멜로디여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건 공연 직전 진행된 워크숍(Wir spielen Oper!) 덕분이다. 5유로(한화 약 7500원)을 내고 사전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는 한 시간 분량의 수업이다. 이날 직접 참관해보니, 6~12살 아이들 20여 명이 선생님을 따라 직접 춤추거나 노래를 부르고, 주인공처럼 수수께끼를 풀면서 줄거리를 익혔다. 또 왕의 심복이었다가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는 감옥지기 역할의 배우 코넬리아 덱스가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찾아와 10여분 간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은 “당신은 착한 편인가요 악당 편인가요?” “언제 어떻게 배우가 됐나요?”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는 오랜기간 매년 상연됐지만, 이같은 별도 워크숍은 올해로 3년째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기획, 지도를 모두 맡고 있는 모차르테움대의 카트린 메라너는 매일경제와 만나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이들의 기쁨”이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이 분야의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과 성악을 전공했고, 캐나다에서 예술행정·문화매개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 운영을 경험했다고 한다.

워크숍과 공연 모두 독일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장 외국인이 참여하기엔 언어 장벽이 있다. 다만 이날 객석에는 한국, 스페인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어린이 관객도 있었다.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부모님을 따라 독일 쾰른에 거주하며 독일어를 배웠다는 정세영 양(10)은 “전에 본 적 있는 뮤지컬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오케스트라가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잘 보여서 색달랐다”며 “(사전 워크숍에서 만난) 배우를 무대에서 다시 본 것도 반갑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어린이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무국의 카트린 메라너. 사진제공=모차르테움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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