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미쳤다” 정이삭 감독 ‘트위스터스’…이게 블록버스터 재미지!
고전 공포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상영되던 커다란 극장 스크린이 무시무시한 토네이도에 종이처럼 찢겨나간다.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휴짓조각처럼 사람들이 하늘로 날아가고 남은 관객들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객석 의자에 매달린다.
14일 개봉하는 ‘트위스터스’의 클라이맥스인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저도 모르게 객석 손잡이를 꼭 잡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트위스터스’는 그만큼 거대한 스크린이 주는 몰입감을 극대로 몰아붙이는,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블록버스터의 쾌감 가득한 영화다.
‘트위스터스’는 원작 ‘트위스터’(1996)가 나온 지 28년 만에 선보이는 속편 영화다. 재난 블록버스터가 한물간 장르가 된 지금, 이 영화의 흥행 성공에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지난달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뒤 개봉 첫 주말에 흥행 1위에 올랐고 전 세계에서 2억77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는 ‘미나리’(2020)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정이삭 감독의 첫 블록버스터 연출작이다. ‘노매드 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중국계 클로이 자오가 마블 대작 ‘이터널스’에서 무너졌을 때처럼 쏟아졌을, 예술 영화 연출 이력의 아시아계 감독에 대한 우려도 정이삭 감독은 깔끔하게 종식시켰다. 7일 내한한 정 감독은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두려워서 안 한다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 도전에 나섰다”고 밝혔다.
‘트위스터스’는 토네이도와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원작과의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영화다. 대학 시절 화학물질을 사용해 토네이도를 소멸시키는 실험을 하다 친구 셋을 잃은 뒤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에게 함께 살아남은 친구 하비(안소니 라모스)가 찾아온다. 하비는 토네이도를 없애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다며 동참을 요청한다. 하비의 팀과 토네이도를 찾아 떠난 길에 토네이도를 찾아다니는 과시적인 인플루언서 타일러(글렌 파월) 일행을 만나며 두 일행은 경쟁을 벌인다.
‘트위스터스’의 핵심은 토네이도의 구현이다. 정이삭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CG)을 활용해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주는 것보다 마치 옆에서 벌어지는 듯한 구체적인 긴박감을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대부분의 장면을 블루스크린 앞이 아닌 영화의 배경인 오클라호마에서 찍었고 토네이도가 잦은 이 지역의 흐리고 불안한 하늘빛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영화 속 가장 강력한 6번째 토네이도 장면을 촬영할 때 실제 폭풍이 몰아쳐 만들어 놓았던 농산물 직판장 세트장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촬영팀은 폭풍에 무너지지 않도록 콘크리트로 텐트를 일일이 고정해 다시 세트장을 지었지만 또 한 번의 폭풍으로 모든 게 날아가는 토네이도를 겪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오클라호마 옆 아칸소주 출신으로 “어릴 때 농장으로 이사한 지 2, 3주 만에 토네이도로 밤에 전기가 나간 어두운 집에서 두려움에 떨던 기억이 있다”면서 “이런 기억과 자연 현상을 사실적으로 영화에 반영해 관객들이 직접 토네이도를 경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볼거리 중심으로 단순하게 달려가는 얼개를 취하면서도 원작과 달리 악당과 주인공의 뻔한 대결을 만들지 않았다. 또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구석구석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새겨넣은 건 정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토네이도의 크기를 측정하는 기계 ‘도로시’와 함께 허수아비, 사자, 양철나무꾼까지 등장하고 주인공이 운전하는 차와 옷차림에도 튀지 않게 원작의 흔적을 담았다. 스톰 체이서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대박, 미쳤다”라는 한국어 대사가 나오는 건 정 감독과 그의 오랜 한국계 동료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라고. 무국적성의 블록버스터 안에 한국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준비한 것도 국내 관객들에게는 작은 선물로 느껴질 법하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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