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이번엔 독립운동가 김경천…전투 장면 쓴 뒤 몸살 앓아"
독립군 지도자 김경천과 당대 조명…"인간의 삶 생생히 재현하는 게 문학"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사회학자인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는 수년 전부터 소설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의 변화를 탐구한 3부작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을 펴낸 그는 자신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봉건과 근대가 맞부딪힌 역사를 조명한 '강화도'로 2017년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한국문학사(史)에서 잊힌 작가 김사량을 다룬 '다시, 빛 속으로'를 두 번째로 펴냈다. 그리고 최근엔 연해주의 독립군 사령관 김경천(金擎天·1888~1942)을 자신의 세 번째 장편소설 '연해주'로 불러냈다.
'연해주'는 독립운동가 김경천의 시대적 고민과 삶의 궤적, 그를 둘러싼 역사의 격랑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8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사무실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연해주는 어마어마한 조선인의 애환이 묻혀있는 곳"이라며 "그곳에서의 독립투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혁명의 불꽃이 뜨겁던 때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야욕과, 독립을 열망하던 조선인들의 열망이 충돌한 연해주의 독립투쟁을 이끈 핵심 인물이 바로 김경천이었다.
대한제국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경천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 엘리트 부대인 도쿄기병연대에 배속된다. 대한제국이 무너지던 때 시민의 자유라는 관념에 어렴풋이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군에서 잠시 병가를 얻어 귀국했다가 3·1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시위 대열에도 합류한다.
이후 김경천은 일본 육사 후배 지석규(지청천)와 함께 군을 탈출해 만주로 건너가고, 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지석규, 신필균과 함께 독립군을 양성한다. 연해주로 터전을 옮겨서는 일본군의 사주를 받아 한인 부락을 약탈하던 마적단을 괴멸시키고, 이때부터 '백마 탄 김 장군'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하지만 국내 진군을 앞두고 소련 정부의 정치적 희생양이 된 그는 치욕적인 무장해제를 당하고 강제로 이주당한 뒤 수용소군도에서 쓸쓸히 생을 마친다.
소설 '연해주'는 대한제국 말기와 국권 피탈, 3·1운동, 간도와 연해주의 무장투쟁 등을 온몸으로 겪은 김경천을 중심으로 당대 실존 인물들이 살아낸 격동의 역사를 다이내믹하게 보여준다.
"기존에 연해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경천은 민족주의 성향의 부대를 500~1천명가량 규합했어요. 누가 시켰을까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어요. 현지인들 대부분 가난했어도 독립군에 물자를 대줬지요. 그 심정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특히 김경천이 이끄는 부대가 일본군과 백군(제정러시아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장면을 쓰면서 힘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포탄이 쏟아지고 기관총이 난사되는 상황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너는 뭐했느냐, 너는 그렇게 포탄이 쏟아지는데 질주해본 적이 있느냐'라고 자문하게 되더군요. 내가 살았던 1970~80년대 경험들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전투 장면을 쓰고서는 몸살을 앓았지요."
김경천이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공화주의 등 여러 이념이 공존하고 또 충돌하던 때였다. 독립군은 의지할 나라가 러시아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볼셰비키 혁명군(적군)에 가담하거나 협력해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
작가는 작품의 이런 역사적 맥락을 얘기하면서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소련공산당 입당 전력을 두고 제기된 육사의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현재의 잣대로 지난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선머슴 짓이죠. 그렇게 하면 역사 자체가 망가집니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 안에 들어가 봐야 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그런 태도가 매우 부족합니다."
본업은 사회학자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세 권을 낸 작가로서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도 거듭 드러냈다.
"사회과학이 포착한 인간은 추상적 인간입니다. 개개인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어렵지요. 사회과학의 핵심은 객관성인데 그 객관성에 안주할 수가 없더군요. 인간의 삶을 재현하고 생생히 끄집어내는 문학과 사회과학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나남출판. 372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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