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을 롤모델로 삼았던 박태준, 이대훈이 끝내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월1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는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의 출전권을 두고 경량급 간판스타인 장준(24·한국가스공사)과 떠오르는 ‘신성’ 박태준(20·경희대) 간의 ‘사생결단’의 승부를 펼쳐졌다. 장준이 세계태권도연맹(WT) 올림픽 랭킹 3위, 박태준이 5위로, 둘 다 올림픽 출전 자격 조건인 5위 이내에 들었지만, 체급별로 국가당 한 선수만 출전 가능했기에 대한태권도협회는 이날 두 시간 간격으로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쳐 승리한 선수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태준이 1,2경기에서 모두 1회전을 내준 뒤 2,3회전을 내리 잡는 역전승을 거두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승리 직후 박태준은 당시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도록 꼭 금메달을 따서 돌아오겠다”며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난 2024 파리 올림픽. 생애 첫 도전을 앞두고 더 많은 땀을 흘린 박태준은 한층 더 성장했고, 약속대로 금메달을 가져왔다. 사생결단 승부에서의 승리가 금메달을 만든 셈이다.
결승에선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세계랭킹 26위)를 만났고, 2-0(9-0 13-1)으로 앞선 끝에 상대 부상으로 인한 기권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나온 한국 태권도의 값진 금메달이었다.
아울러 남자 58kg급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었다. 박태준의 롤모델이었던 이대훈(대전시청 코치)이 2012 런던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2016 리우의 김태훈, 2020 도쿄의 장준이 동메달을 따낸 바 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해내지 못했던 ‘금빛 발차기’를 스무 살의 신성 박태준이 해낸 것이다. 특히 박태준은 이대훈을 좇아 그의 모교인 한성고에 입학 정도로 ‘이대훈 키즈’였다. 이대훈은 한성고를 찾아와 박태준에게 각종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스승이 끝내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제자가 이뤄준 셈이다.
상대 부상으로 경기가 끝났기에 박태준은 승리 직후 마고메도프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했고, 시상식에선 그를 부축하며 박태준의 ‘승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마고메도프가 매트에서 완전히 내려가기 전까지 세리머니를 아끼던 박태준은 그가 내려가자 태극기를 두르고 덤블링을 하며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믹스트존에 들어선 박태준은 “이거 꿈 아니죠”라며 되물었다. 꿈에서도 간절히 그렸던 올림픽 무대에서 따낸 금메달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감이었다. 이어 “제가 21년을 살아온 게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난 2월 올림픽 선발전 때 ‘이번에 지면 그만둔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절박했다. 비로소 오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너무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경기 막판 박태준은 자신의 발차기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며 등을 돌린 마고메도프에게 연이어 공격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묻자 “원래 태권도는 ‘갈려’ 전까지 공격하는 게 정해진 규칙이다. 상대가 포기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박태준의 세 살 터울 동생 박민규도 태권도 선수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박태준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해줬다. 이날은 매 경기마다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았다. 박태준의 금메달에는 동생 박민규의 지분도 있는 셈이다. 박태준은 “1등하면 동생이 자기를 꼭 언급해달라고 했는데, 그럴 수 있게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형제 간의 우애도 세계 1등감이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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