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고성진, '플라워' 리더 겸 작곡가‧프로듀서
발라드에서 록, 트로트까지 다양한 작품세계
이찬원 정규앨범 ‘ONE’ 음악감독
“이찬원, 이제 싱어송라이터로 굳건히 섰다”
연내 서울서 플라워 25주년 기념 공연
고유진 처음 볼 때 “이 사람”이라 확신
88년 대학가요제 출전, 신해철 밴드와 경합
송홍섭 ‘송 스튜디오’로 음악계 첫 발
아들도 전도유망한 작사‧작곡가
“예전 명성 의미없어, 항상 신인 작곡가로 여기며 일해”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곡 많이 쓰고파”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Endless'는 그룹 플라워의 대표곡이다. 이 곡은 KBS2TV가 2000년 11월13일부터 2001년 1월2일까지 방송한 16부작 월화드라마 '눈꽃' OST로 삽입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엔드리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Endless'를 작곡한 고성진(57)은 플라워의 리더로, 그룹 활동 외에 여러 가수의 히트곡을 쓴 유명 작곡가다. 그는 안재욱 'Forever'를 필두로 최진영 '영원', 김정민, 홍경민, 테이, 김형중, 이지훈, 장윤정, 이찬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수의 곡을 썼다.
또한 고성진은 이찬원의 첫 번째 정규앨범 'ONE'의 음악감독으로 모든 트랙 프로듀싱을 총괄했다. 이찬원이 전곡을 작사‧작곡한 미니2집 'bright;燦'의 타이틀곡 편곡과 세션에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그의 작업물은 2024년 8월 8일 기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208곡이 등록돼 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선 그룹 '플라워' 리더이자 여러 히트곡을 쓴 고성진 작곡가‧음악감독을 만났다.
고성진 감독이 살아온 여정을 보면 음악적 뿌리가 록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중장비 대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7년 서울에서 외동으로 태어났다.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이라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고등학교 입학쯤 주다스 프리스트, 블랙 새버쓰 등 헤비메틀에 심취한 록매니아였고, 한영고교에서 '스쿨버스'란 밴드에서 리드기타를 맡았다. '스쿨버스'란 팀명은 해외의 록밴드 뮤직비디오에 스쿨버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고 여기에 힌트를 얻어 지었다.
레드 제플린과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등을 카피하던 그에게 어느 날 잉베이 맘스틴이란 음악이 찾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연주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를 작곡한 오태호가 들어보라고 추천한 음악이었다. 그런데 고성진이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건 오태호가 잉베이 맘스틴의 곡을 서너 번 들어보고 바로 카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치는 사람도 있는데"라고 놀란 그는 기타 대신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오태호 외에 '메틀컴파니'라는 80년대 헤비메틀 프로젝트 연주도 그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하대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 내내 머릿속엔 음악만 있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본선까지 올랐다. 당시 밴드 4팀이 본선에 올라 고성진의 '스쿨버스'와 경쟁했는데 신해철 밴드도 그중 하나였다.
고성진은 어릴 때부터 고기를 싫어했다. 외동아들 건강이 걱정된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기를 먹이려 했지만, 그는 고기만 먹으면 토했다. 결국 부모는 고기 먹이는 걸 포기했고 이후 27세 무렵부터 삼겹살을 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특이체질로 인해 '저체중'으로 단기사병(방위)으로 복무했다.
1991년 당대의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운영하던 '송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음악계에 발을 딛게 된다. 가수 최남욱의 곡을 쓰며 작곡가로 데뷔했지만, 김정민 곡이 먼저 발매되며 공식적으론 김정민 곡으로 '입봉'한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다.
송홍섭의 '송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와중에 '두손기획' 강민 사장과도 작업하기에 이른다. 두손기획은 당시 김정민 소속사로, 고성진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때부터 두손기획과 함께했다.
작곡가로 일하던 초기엔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그는 물론 부모도 걱정하기 시작한 것. 결국 고성진은 아버지에게 "30살까지만 음악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겠다"며 아버지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했고, 이 돈으로 당분간 버틸 수 있게 됐다.
그의 다짐은 예언이나 한 듯 정말로 30살이 되며 실현됐다. 97년에 발표한 안재욱 'Forever'가 대대적으로 터지며 작곡가로서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 곡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왔다.
고성진은 1999년 '플라워'를 결성해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손무현과 활동하던 김우디와 플라워를 만들었고, 이어 김희성(보컬)이 합류했다. 그러나 플라워 1집 녹음 중 김희성은 성대결절로 중도에 빠지고 후임으로 가입한 게 고유진이다.
고성진 감독은 고유진을 처음 만난 순간 "이 사람이다"란 생각이 들어 오디션도 보지 않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고유진은 본 순간 제가 하고 싶던 록밴드의 보컬 이미지와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디션도 하지 않고 보컬리스트로 낙점되자 고유진은 놀라며 "정말 노래 안 들어봐도 되겠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이후 고성진은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고유진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자신의 직감대로 노래 참 잘한다고 다시 한번 확신을 갖기에 이른다.
"원래 플라워는 고성진-김우디 2인 구성으로 활동하며 상황에 따라 객원 보컬을 쓰는 형태로 활동하려고 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밴드음악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고유진을 만나면서 팀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겁니다."
보컬 성대결절 등 여러 변수가 있었음에도 플라워 1집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고성진은 고유진에게 1주일의 시간을 주며 전곡을 다 외우고 열심히 연습하라고 했고, 고유진은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해 녹음은 10일 만에 끝났다.
고성진 감독은 1집 작업 때를 기억하며 고유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진이는 스펀지 같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즉시 그걸 흡수해 노래하는 타입이죠. 센스도 남달랐어요. 또한 음정과 박자에 대해선 말할 필요 없이 잘했습니다."
고유진은 플라워와 처음 함께하던 시절을 "록과 팝의 중간 지대쯤에 있는 음악이라 새롭게 다가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성진은 그룹 플라워를 할 때부터 너무 매니악하지 않고 대중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을 1집부터 이룬 셈이다. 플라워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애정이 가는 앨범으로 1집을 꼽았다.
"플라워는 2년 반 동안 3집까지 발매했습니다. 라이브까지 합치면 더 많아요. 때문에 사람들은 당시 플라워 활동기간을 5년 이상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죠."
플라워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보여주고 고유진의 입대로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기간에 고성진은 테이, 김형중 등 여러 가수와 작업하며 작곡가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PC게임에 심취해 '리니지',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 등 5년 이상 게임에만 미쳐 살았다. 한 곳에 푹 빠지면 올인하는 그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예다.
이처럼 게임에 중독된 시간을 보내던 그는 2013년부터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대구 실용음악학원, 추계예대 등에서 강의하며 학생들과 교류했고 이를 계기로 다시금 음악적 본능이 꿈틀댔다. 게임중독으로 '잃어버린 10년'이었지만 그만큼 의욕도 왕성해졌다. 발라드부터 다양한 장르의 곡을 써서 여기저기 보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 계속 시도하는 와중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이찬원 소속사에서 곡을 찾고 있다고 해 고성진 감독도 소속사에 곡을 보냈는데, 그게 '메밀꽃 필 무렵'이란 노래다.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그리움, 슬픔에 관한 느낌을 곡에 담아달라고 해서 그에 맞게 작곡한 곡이다. 앞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성진 감독의 이력을 보면 감성적인 발라드에서 특히 역량을 발휘한다. 물론 자신의 DNA인 록을 내세우는 곡에서도 특장점을 잘 살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메밀꽃 필 무렵'을 처음 접한 이찬원도 너무 좋아했고, 이찬원 소속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록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듣던 추억도 떠오르며, 따라서 트로트 곡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메밀꽃 필 무렵'을 시작으로 이찬원 소속사는 작곡가 고성진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냈고, 고성진은 이찬원의 첫 정규앨범 음악감독(총괄 프로듀서)을 맡아서 작업을 진행했고 미니2집에도 참여했다.
"정규앨범 'ONE'을 작업할 때도 이찬원의 남다른 음악적 센스와 탁월한 가창력에 감탄했는데, 미니2집 'bright;燦'은 전곡을 이찬원이 작사와 작곡을 했습니다. 곡을 너무 잘 써서 놀랐어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찬원이 멜로디를 만들지 않은 게 없죠. 모든 걸 찬원이가 한 것이고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미니2집으로 이제 이찬원은 싱어송라이터로서 굳건하게 선 것이니까요."
"이찬원은 향후 트로트계의 나훈아, 남진 같은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고성진 음악감독은 이찬원에 이어 장윤정 '별'을 작곡했다. 장윤정은 이 곡을 받고 록적인 성향의 노래라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장윤정은) 생각은 오래 했지만, 결정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뭐 하나 지적할 게 없을 만큼. 괜히 장윤정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곡 버릇
"차 안에서 악상이 떠오를 때가 가장 많아요. 그리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스마트폰에 녹음하기 위해 흥얼거리곤 합니다. 자주 이렇게 하는데, 길 가던 사람들은 제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볼 때가 많죠. (웃음)"
"작업 중 결코 오래 앉아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곡이 잘 풀리지 않아도 그대로 앉아 있지 않고 반드시 자주 환기해가며 머리를 쉬게 하려고 합니다."
고성진의 작곡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작품
"'Endless'와 '영원'입니다. '영원'의 경우 개인적으로 클래시컬하고 웅장한 스타일이 들어간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걸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ndless'는 OST를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처음부터 임팩트가 있는 노래죠. 후렴구를 먼저 나오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미 악상이 떠올랐기 때문에 일주일도 안 될 만큼 빨리 썼던 것 같아요."
황신혜‧김민종‧윤다훈 주연의 2002년 영화 '패밀리' OST를 작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곡 넘게 만들 만큼 너무 힘들게 OST 작업을 했던 관계로 이후부터 영화음악 OST는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가수 중에선 박지현, 린을 눈여겨보고 있다.
"박지현은 정말 매력적인 가수입니다. 린을 보며 저런 목소리로 트로트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섬마을 선생님' 같은 느낌의 옛날 스타일 정통 트로트를 린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손민준이 갖고 있는 보이스 컬러도 매력적입니다. 왕자 같은 외모, 고급스러움. 노래도 부드럽게 하는 것 같고. 손민준은 김민우가 처음 등장할 때를 연상케 합니다. 앞으로 기대되는 가수죠."
이젠 게임중독에서 완벽하게 벗어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취미는 게임이다. 최근 즐겨하는 게임은 '디아블로4'라고. 건강을 위해 1년 전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고성진 감독은 운전면허를 따 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살 무렵 운전면허 실기에서 떨어진 후 귀찮아서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것. 고기만 먹으면 토하는 체질, 저체중, 10여 년 게임중독에 빠진 삶, 그리고 운전면허까지. 인터뷰 내내 흥미로운 스토리가 끊이질 않았다.
2024년은 플라워 25주년이 되는 해다. 따라서 25주년 서울 공연을 할 예정이지만 아직 장소와 날짜는 미정이다. 25주년 기념 플라워 새 앨범이 나올 법도 하다.
"이제 히트곡에 연연하던 때는 지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뭔가, 그리고 밴드로서 좋은 음악이라는 게 뭔가 등을 고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새 앨범을 내려고 합니다."
"플라워 음악은 듣기 편한 음악. '이지리스닝', 따뜻하게 들릴 수 있는 음악으로 정의하고 싶어요. 저에게 플라워란 친척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외동이기 때문에, 그래서 플라워 밴드는 친척 같은 의미죠."
현재 고성진은 플러피(Fluffy) 기타를 애용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기타리스트 출신의 작곡가‧프로듀서다.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아들도 현재 작사와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다. 30대부터 40대 초까진 하루 5갑 이상 담배를 피우던 헤비스모커였다. 술은 체질상 잘 마시질 못한다.
"예전의 명성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신인 작곡가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팀 작업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은데, 특히 아이돌 음악은 꼭 해보고 싶어요."
"제가 하는 음악은 '대중음악'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는 쉬운 어법으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곡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또한 이런 게 좋은 작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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