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까지 감춰온 노동의 맨얼굴 [노동의 표정]
제1편 평론가가 실토한 자기 고백
노동에 기댔던 삶의 죄책감
최저기준선 그어주는 노동법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찾아서
문학 속에서 읽어낸 노동의 모습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노동'이다. 예술도, 업무도, 학업도 노동이다. 하지만 우린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는 걸 주저한다. 왜일까.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아님 노동이 이미지가 늙고 힘들고 때론 불편해서일까. 우리는 노동할 때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 '노동의 표정'이란 새 기획물을 연재한다. 글은 문종필 평론가가 쓴다. 그 첫번째 편, '고백'이다.
내게 노동은 무엇일까. 잘 잡히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도움을 받아 노동을 이야기해야 할까. 아니면 여러 이론서의 도움을 받아 노동의 형태를 진단해야 할까. 어렵다. 이 질문에 여러 생각이 들지만 '당신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수줍고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의 밥벌이(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추상적인 '노동'의 흔적에 조금은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태도로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구체적인 노동의 작은 표정들이 하나의 커다란 지형도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독자들은 흩어진 주변의 노동을 응시하겠다는 나의 정체를 궁금해할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노동을 쓴다고 하며, 어떻게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말이다. 답하겠다. 내게 노동은 갚아야 할 빚이다. 숫자로 표현된 은행 빚이 아니다.
내게는 빚이 없지만, 커다란 빚이 있다.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이 내 등에 매년 새싹처럼 피어오른다. 아무리 잘라도 다시 돋아난다. 날카로운 칼로도 잘리지 않는 섬뜩한 존재가 노동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갚아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빚이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교에 진학해 학업을 시작했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여러 학교를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평론집 「싸움(2022년)」을 출간할 수도 있었던 것도 그런 도움 덕에 가능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나의 시간 속에는 노동이 없었다. 작가로서 출간한 「싸움」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나는 '글쓰기'를 명분으로 너무나 손쉽게 내 삶만을 견디며 싸웠을 뿐, 그 이상은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써왔던 노동을 다룬 글은 모두 부정해도 마땅하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주제에서 오랜 시간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부끄러움의 발로일 수 있고, 돈을 벌지 않고 공부한 '죄책감'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선택한 주제가 노동이다. 나만의 노동방식(글쓰기)로 부끄러움이든 죄책감이든 털어내겠다는 거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해두면 독자들이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며칠 전 인천을 떠나 안성에서 일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평택역으로 향했다. 이것은 매주 목요일 내가 다니는 길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2017년)'의 주인공처럼 버스를 타고 내린다.
영화 속 주인공은 운전자이지만 나는 승객이 돼 타고 내린다. 이날도 터미널에 내린 후 '서울면옥'에 들러 냉면을 먹고 집에 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노동단체에서 발간한 '2024 노동자 권리찾기 안내수첩'을 역사 근처에서 받아봤다. 이 책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노동법은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입니다. 그런데 이 최저기준마저 지키지 않는 회사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법에 어떠한 부분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고, 사용자가 어떤 부분을 위반하고 있는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당한 일일지라도 노동자 개인이 회사에 맞서 싸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찾으라는 이 말에 여러 생각이 든다. 나는 '노동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글을 쓰면 원고료를 받았고, 운이 좋아서 월세를 내지 않는 적당한 집에서 살았다.
그럭저럭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했던 탓에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갈 방식을 꿈꿔왔다. 문학 뒤에 숨는 방식만을 선택한 사람, 한 개인으로 당당히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 이 질문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노동'이라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글 쓰기와, 별 볼 일 없는 선생 노릇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내가 쓰려는 '텍스트 속 노동의 표정'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덜어 내주는 하나의 창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기획물을 통해 '노동의 표정'을 응시하려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한다. 다음호에서 기록해볼 작품은 조혜영 시인의 신간 「그 길이 불편하다(푸른사상ㆍ2024년)」이다. 여기엔 어떤 노동의 표정이 담겨 있을까.
문종필 평론가
ansanssunf@naver.com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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