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대를 이은 21연패 악몽 “다시 찾아온 야구 PTSD”
메이저리그(MLB) 8시즌 동안 94홈런을 때린 래리 시츠(65)는 지금도 1988년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그해 시츠는 볼티모어 지명타자로 활약했고, 팀이 21연패로 아메리칸리그 최다연패 불명예 기록을 세우는 걸 함께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 개빈 시츠(28)도 야구 선수로 자랐다. 빅리그팀의 당당한 주전 외야수다. 그러나 아버지는 올해 아들의 야구를 보면서 36년 전 끔찍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개빈이 뛰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지난 6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원정경기에 1-5로 패하며 1988년 볼티모어가 세웠던 21연패 타이 기록을 세웠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MLB 역사에 남을 연패 기록의 한 당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버지 시츠는 디어슬레틱에 “야구 PTSD(외상 후 증후군)”이라고 했다. 다른 팀이라면 그저 웃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시츠는 2024년의 21연패가 1988년의 21연패보다 훨씬 더 끔찍할 거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24년 전에는 소셜미디어(SNS) 악플에 시달릴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시츠는 “모두가 오늘은 화이트삭스가 어떻게 질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고 했다. 연패 기간 매일 아들과 통화했다는 그는 “자기 내면에서 힘을 끌어내야 한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시츠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승리라고 했다. 그는 “터널 끝에는 빛이 있다. 지금의 장애물만 넘어서면 된다. 1경기만 이기면 된다”고 말했다. 1988년 볼티모어가 긴 연패를 끊었던 상대는 지금 아들이 뛰고 있는 화이트삭스였다. 그해 54승 107패로 시즌을 마무리한 볼티모어는 바로 다음해 87승 75패 지구 2위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반등했다. 아버지 시츠가 아들의 팀에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스토리다. 그는 “연패 기간에는 자연히 팀이 이기고 지는 것보다 자기 개인 성적에 더 집중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야구는 그런 경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버지 시츠는 화이트삭스가 연패를 끊는 날 아들에게 반드시 축하 인사를 할 거라고 했다. 그는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빅리그에서 이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화이트삭스는 7일 오클랜드를 5-1로 꺾고 길어도 너무 길었던 연패를 결국 끊어냈다. 아버지도 아들도 오랜 악몽에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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