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두산사태 겨냥?…"지배주주 이익만 우선하는 경영, 근절해야"
8~9월 중 상법 개정 토론회 예고
운용업계 "주주충실의무 도입 찬성"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된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사태를 의식한 듯 지배주주 이익만 우선시하는 "그릇된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날리기도 했다.
이복현 "정부와 시장 노력에 찬물 끼얹어"
이복현 금감원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을 비롯해 23개 공모, 사모, 외국계 자산운용사 CEO가 참석했다. 이 원장이 자산운용사 CEO를 소집한 건 작년 11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이 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기업의 성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본시장 인프라, 상장제도 및 세제 등 전방위적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며 "금감원도 이러한 정부의 정책 추진방향에 발맞춰 기재부, 법무부, 금융위 등 소관 부처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정책 제언, 구체적 실행방안 논의 등 적극적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기업경영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와 시장참여자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근절되어야 할 '그릇된 관행'"이라고 비판하며 "주주의 권익보호 보다는 경영권 행사의 정당성만이 강조돼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이 특정사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같은 발언은 최근 논란이 된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두산그룹은 분할합병과 주식교환을 거쳐 지금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붙이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알짜회사인 두산밥캣과 적자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주식교환비율이 시가 기준에 따라 1대 0.63(밥캣 1주당 로보틱스 주식 0.63주로 교환)으로 정해지면서, 적정치 않다는 논란이 일었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청했지만 합병비율은 바뀌지 않았다.
이 원장은 이러한 발언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도록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그간 주주간 이해상충을 해소하기 위해 개별적·사후적으로 대응해왔다"며 "그러나 이제는 기업들의 철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원칙 중심의 근원적 개선방안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르면 이번 달 안에 상법 개정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원장은 "8월과 9월 중에는 시장참여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간담회, 열린 토론회 등을 개최해 더 늦기 전에 자본시장 선진화에 필요한 사회적 공감대를 본격적으로 형성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밸류업에 도움"
이날 간담회에 자리한 운용사 수장들도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체로 공감을 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을 유발하는 한국 특유의 기업지배구조"라고 지적하며,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도입·집중투표제 의무화·운용사의 스튜어드십코드 확대를 밸류업 대책으로 제안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최혁재 프랭클린템플턴 본부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려면 주주간 구조적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장 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하거나 주식을 맞교환할 때 가치평가 방법을 개선하는 안 등을 예로 들었다.
참석한 CEO 중 한명은 상법 또는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이사들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하도록 하는 일반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과 함께 배임 관련 소송 등 각종 법률 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 만큼, 보완책도 같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해서도 다뤄졌다. 일부 운용사는 투자 위축, 국내 증시 자금 이탈, 펀드런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쪽에서는 만일 금투세를 시행할 경우 사회적 논의를 통한 공감대 형성, 제반 인프라 구축, 보완책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복현 원장은 운용사들을 향해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 이행 △내부통제 강화 및 준법의식 고취 △상장지수펀드(ETF) 과열 경쟁 자제 △해외 부동산 펀드의 체계적 리스크 관리 등을 당부하기도 했다.
운용사들은 산업 발전을 위해 △공모펀드 활성화 제도 개선 △장기투자 확립을 위한 펀드매니저 평가체계 개선 △퇴직연금 제도 개선 △벤처·기업공개(IPO) 시장 간접투자 활성화를 위한 상장 의무보유기간 단축 등을 당국에 요청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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