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이재명’에 묻힌 민주당… ‘정당 제도화’ 부재가 치명적 한계[Deep Read]

2024. 8. 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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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의 Deep Read - 민주당과 제도화
강성 팬덤 발호 속 이재명 일극체제 구축… ‘오직 명심’ 받들기 위한 의정폭주로 이어져
당원중심 탈피·당내 민주주의 강화 과제… 전략적 성찰 없인 회복 어려운 미래 맞을 수도

정당은 대의민주주의 근간이다. 제도화의 수준이 정당의 수준과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현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제도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재명 일극 체제가 굳어지고 강성 팬덤이 발호하며 오직 숫자에 기반해 대통령 탄핵과 특검을 밀어붙이는 반민주적이고 반협치적이며 반문명적이기까지 한 민주당 행태가 바로 낮은 제도화 수준을 말해준다.

◇민주당의 부적응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정당 정치”라는 피터 메이어의 말처럼 정당의 위상과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가 핵심인데, 한국 사회에서 기존 정당들이 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책 결정 과정과 입법 과정에서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압도적인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두 달 만에 탄핵안 7건, 특검법 9건, 쟁점 법안 7건을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민주당의 의정 독주와 입법 폭주는 정당정치를 위협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최근 정당 지지도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에 크게 뒤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국갤럽 7월 4주(23∼25일) 조사 결과, 국민의힘(35%) 지지도가 민주당(27%)보다 8%포인트나 앞섰다. 전국지표조사(NBS, 7월 22∼24일)에서도 국민의힘은 36%로, 민주당 25%보다 11%포인트나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8·18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역별 순회 경선이 치러지고 있는데도 컨벤션 효과는 보이지 않고,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미국정치학회장을 지낸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 교수의 정당이론을 빌리자면 민주당의 적응 능력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당 적응 능력이란 정치적 환경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정치적 환경 분석, 유연한 전략 개발, 대중 소통, 내부 조정 등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적응 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총선 승리에만 도취돼 치명적인 인식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오직 이재명’을 위해

민주당은 어떤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당원 중심 정당’에 대한 강한 집착을 꼽을 수 있다. 8·18 전당대회에 출마해 순회 경선에서 90% 가까운 표몰이를 하는 이재명 후보는 “당을 더 당원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기 때문에 당의 운영과 결정에 당원 참여를 더 많이 보장하는 게 민주주의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 모델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는 유럽 좌파 정당들의 구시대적 산물이다. 강성 팬덤에 의한 정당이나 의정 간섭은 대의민주주의를 퇴행시킨다. 민주당이 국회 개원 두 달 동안 민생과 상관없는 탄핵과 특검 등에 치중하는 배경엔 당원 중심 정당이라는 후진성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의 꼬리(당원)가 몸통(민주당)을 흔드는 ‘왝더독’이다.

이재명 일극 체제와 당론 강제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여야 모두의 문제이나 특히 민주당은 당 대표에게 권력이 독점돼 있는 ‘개인화되고 중앙집권적’인 권력 구조를 갖는다. 대표가 결정하면 의원들은 따른다. 8·18 전대 이후 구성될 것이 확실한 ‘이재명 2기 체제’에서도 ‘명심이 곧 당심’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엔 강제 당론으로 지정해 놓은 법안만 수십 개에 이른다. 22대 국회 당론 1호 법안인 이재명 후보의 공약 ‘전 국민 25만 원 지급법’이 최근 강행 처리됐다. ‘이재명은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표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민주당은 또 극한적인 대여 투쟁만이 이재명 후보의 사법 방탄과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조기에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고에 빠져 있다. 민주당이 이 후보의 수사 검사를 포함한 4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한 건 이런 맥락이다. 노골적인 수사 외압이고 재판 지연 행위다. 헌법적·법률적 근거도 희박한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라는 것도 강행했다. 윤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을 더 강화해 세 번째로 추진하겠다는 건 대통령 거부권 유도 및 탄핵 명분 축적용이다.

◇낮은 제도화 수준

민주당이 안고 있는 이 모든 문제는 정당 제도화의 수준이 낮다는 데서부터 나온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제도화를 ‘정치적 조직이나 행동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규칙과 구조로서 자리 잡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정당의 제도화는 곧 정당의 내부 조직, 운영 방식, 정책 결정 과정 등이 일정한 틀을 갖게 돼 안정성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제도화 수준이 낮으면 민주적 절차와 의사결정 구조가 확립되기 어렵고,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솔라 리(sola Lee)’, 오직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해 당헌·당규를 수시로 바꾸는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 바로 제도화 부재를 말해준다. 오직 이재명을 위해 ‘부정부패와 관련된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한다’는 당헌 80조 내용을 삭제했고, 당헌상 ‘당 대표의 대선 출마 시 1년 전 사퇴’ 조항에 예외 규정을 추가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게 하고 2027년 3월 대선에도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당헌·당규를 여반장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제도화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원 중심의 극단적 팬덤 정치, 이재명 일극 체제와 묻지마 당론 정치, 대통령에 대한 설익은 탄핵 추진, 낮은 정당 제도화 등의 치명적인 한계 때문에 민주당은 총선 압승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하락을 경험 중이다.

민주당엔 세 개가 있고 세 개가 없다. 개심(개딸의 마음)만 있고 민심은 없다. 이재명 일극만 있고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없다. 탄핵·특검만 있고 민생은 없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당원 중심 정당’에서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전환해야 한다. 1인 사당화에서 벗어나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비대해진 중앙당을 축소하고 민주·민생·민심의 ‘삼민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회복 어려운 미래

민주당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거뒀지만 2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총선 승리에 도취해 코앞에 떨어진 중대한 과제들을 멀리할 경우 민주당은 회복 불가능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설명

‘샤츠슈나이더’(1892~1971)는 컬럼비아대, 럿거스대, 웨슬리언대 등에서 교수를 지낸 정치학자.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미국의 다원주의 정치이론에 대한 파괴적 비판을 제시.

정당 ‘제도화’란 정당이 정통성을 갖게 되는 과정. 새뮤얼 헌팅턴에 따르면 ‘과정과 절차 속에서 가치와 안정을 획득하는’ 것. 제도화의 주요 요인으로 적응성·복합성·자율성 등이 꼽힘.

■ 세줄요약

민주당의 부적응 : 정당은 대의민주주의 근간이며, 제도화의 수준이 정당의 수준을 결정함. 민주당이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떨어지고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적응 능력 부재를 말해줌.

‘오직 이재명’을 위해 : 민주당의 치명성은 당원중심주의에 따른 강성 팬덤의 발호, ‘오직 이재명’을 위한 일극 체제와 당론 강제 등에 있음. 민주당의 반민주적·반협치적 특성은 ‘정당 제도화’의 수준이 낮은 데서 나옴.

낮은 제도화 수준 : 명심 받들기를 위해 당헌·당규를 여반장으로 바꾸는 모습이 낙후된 제도화 수준을 보여줌. 당원중심 및 1인 사당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민주당은 회복하기 어려운 미래를 맞이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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