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 터질 때까지 일하거나, 쫓겨나거나"…임신 출산이 죄가 되는 사람들 [스프]

제희원 기자 2024. 8. 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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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일본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취재하기 위해 군마현의 반도체 관련 제조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주노동자 정착을 돕기 위한 민간의 노력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는데, 가장 놀랐던 점은 외국인 직원 가운데 육아휴직 중인 여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인 28세 아힌사 니루마니는 2016년에 일본에 입국해 이 회사에서 2년간 근무했고, 남자 아기를 출산한 다음 10개월째 육아휴직 중이었습니다. 최근엔 그녀의 남편도 이 회사로 취직해 사내 부부가 됐는데, 육아휴직 기간에도 회사가 제공하는 기숙사에 머물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들 시온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그녀의 답변에는 선입견으로 가득한 기자의 질문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공장을 둘러보는 내내 부끄러움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이 회사 직원 120명 가운데 20명 정도가 외국인이었는데, 모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위험한 일을 외국인에게 시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완벽한 편견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의 산재 비율이 내국인보다 높다고 기자가 설명하자, 이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오히려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1년만 쓰고 (외국인 직원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육아휴가제도 역시 일본인과 외국인 직원이 항상 동일하게 적용받습니다. '영주'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 회사가 잘 포착해서 반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신 중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출국 후 유산

이 취재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된 이유는 최근에 본 한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임신 중이던 태국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강제 출국된 다음 유산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여성은 경북 경주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담장을 넘다 발목을 크게 다쳤고 이후 자신이 초기 임산부인 사실을 알렸지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속 하루 만에 출국 조처된 여성은 결국 태국 현지에서 태아를 유산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출생으로 나라가 소멸할 위기라는 대한민국에서도 '인구에 포섭되지 않는 생명의 탄생'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의 연령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입니다. 이들은 보통 4년 10개월에서 최대 9년 8개월까지 한국에 머무는데, 이 기간은 생애주기상 결혼과 임신, 출산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여느 내국인이 그렇듯, 생의 어떤 기간에 '노동'만 하고 사는 인간은 없습니다. 이주노동자 역시 우리나라에 와서 노동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가족을 꾸리는 일은 '사업주와의 갈등'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국제인권법과 헌법은 가족과 함께 생활을 영위할 권리로서 가족결합권을 보장하고, 국가는 가족 생활에 관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한편 그 권리의 실현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지만, 대한민국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먼 얘기입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과 동등하게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74조는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후를 통하여 90일의 출산 전휴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지만, 현실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깻잎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의 저자인 우춘희 연구활동가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고용주가 해고하는 일은 드물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된 사업장이 대부분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정당한 이유 없이도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업주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임신 기간 해고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해고가 된 이주노동자는 3개월 이내 사업장 취직을 하지 않으면 출국 조치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임신과 출산의 이유로 새로운 사업장에 취직하지 못한다면 지역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신청기간 연장신청서' 등의 서류를 제출하면 되지만 이 같은 제도를 이주여성노동자가 활용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우춘희 연구활동가는 "이주노동여성은 이주노동자라는 처지에 더불어 젠더적 차별이라는 이중 억압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으로 온 결혼이주여성과 이주여성노동자를 분리해서 보는 시각도 여전한데, 결혼이주여성은 아이를 출산하고 가정을 꾸리는 존재로 '당연히' 인식되는 반면, 이주노동여성은 오롯이 '노동력'으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한국 출산율 높여주는 것도 아닌데"…임신 출산은 죄가 된다

대표적인 인력 송출국인 캄보디아의 경우 결혼 적령기가 늦어도 20대 초반입니다. 한국으로 이주하는 시기는 23세~24세가 많다고 하고요. 이 때문에 이미 본국에서 결혼을 한 경우도 있고 내국인 젊은이들처럼 SNS 등을 통해 만나는 등 다양한 루트로 연애를 하기도 합니다.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생애주기상 임신과 출산의 기로에 선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현실은 고려되지 못합니다.
 

의료기관 접근도 어렵다…"임신과 출산은 후순위로 밀려"

대부분의 이주민들은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사업주가 선의를 베풀지 않으면 진료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더욱 제한적으로 보장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이주여성노동자들은 '노동력'으로 취급될 뿐 임신과 출산이 기대되는 존재들이 아니기에 이들에게 있어 임신과 출산은 어쩌면 '선택지'가 될 수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공식 통계로 잡히지는 않지만 임신 중지를 강요당하거나 임신에 대한 고려 없이 고강도 노동을 지속해서 유산을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화성 향남공감의원을 통해 분만 의료비를 지원받은 베트남 출신 미등록 이주민과 그 아기. 사진 제공 :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국제수가' 문제 심각…"자연분만 비용 1,400만 원 청구"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외국인 국제수가'도 문제입니다. 지역 이주민과 소수자 등을 지원하는 화성 향남공감의원의 박슬기 원장은 "병원마다 매기는 게 값인 외국인 국제수가 때문에 임신과 출산 분야에서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말합니다.

건강보험 없이 출산한 베트남 출신 레티하 씨의 경우, 출산 전 아기의 항문이 막힌 것 같다는 진단으로 대학병원에 4일간 입원해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병원비가 1,490만 원 청구됐습니다. 내국인이라면 약 100만 원이었을 의료비의 15배가 나온 겁니다. 레티하 씨의 경우는 지역단체의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게 박슬기 원장의 말입니다.

계층 따라 차별적으로 인정되는 '가족결합권'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가족결합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하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가족결합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등적으로' 나뉩니다. 현행 가족이민제도는 가족 구성원을 초청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동반이 가능한 '가족'의 범위와 체류 기간 등 체류 조건이 달라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재원이나 주한미군 등 이른바 '상류 계층'의 경우 통상 배우자와 미성년인 미혼 자녀의 동반을 허용합니다. 실제 주한외국공관원의 경우, 동성 배우자도 동반을 허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숙련 노동자에 해당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내 출생한 자녀 외에는 가족으로서 동반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높은 임신과 출산의 문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저숙련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결합 기회는 차단되고 있는 셈입니다.

 

정주국가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나라

임신과 출산을 비롯한 이주민의 건강권을 '인권'이 아닌 '특혜'로 접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의 매력은 더욱 낮아질 겁니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주민들이 내국인과 동일한 사회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정부가 이들의 사회 보장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인지 로드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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