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 가계부채 급감이 우려스러운 이유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로 '과도한 가계부채'가 손꼽히는 만큼 "가계부채가 감소한 것이 왜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가파른 데다, 특히 부채 감소를 주도하는 부문이 제2금융권이라는 점이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부동산 PF 부실 충격이 내수 전 부문으로 확산
또한 업권별로 살펴보면 가계대출은 은행권에서만 증가하고 제2금융권에서는 급격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022년 6조 원, 2023년 27조 원이 감소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2조8000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제2금융권 대출금리가 은행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가계의 대출이 더 많이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제2금융권에서 유일하게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업태가 있다. 바로 신용카드회사(여신금융전문회사)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신용카드사의 6월 말 카드론 잔액은 40조 6000억 원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에 도달했다. 칼럼을 쓰며 필자가 주력으로 쓰는 카드사의 카드론 금리를 알아봤다가 15.25%인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5월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평균 4.49%임을 감안할 때 3배 이상 높은 금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 3%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카드론을 받으려고 줄을 선 이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제2금융권에서만 대출이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자와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대출 고객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올해 1분기 79개 저축은행은 당기순손실 1543억 원을 기록하며 5분기 연속 손실 행보를 이어갔는데, 연체율이 8.8%에 이른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체율이 상승해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지자 저축은행들은 본격적인 대출 회수에 나서고 있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건설·부동산(13.4%) 부문에서 가장 높고, 숙박·음식점업(12.4%)과 도소매업(10.6%)이 그 뒤를 이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서 시작된 충격이 내수 전 부문으로 파급되는 셈이다. 물론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 기관이 모두 부실한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고정이하여신(금융기관의 여신을 건전성 정도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 의문, 추정 손실 5단계로 나눌 때 고정 이하 부실 여신을 의미) 모두 손실을 입는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1.6%(8% 이상 유지 권고)에 이른다고 하니 2010년 저축은행 사태에 비해 훨씬 건전한 것을 알 수 있다.
저축은행 5분기 연속 손실 행보, '뱅크런' 위험
하지만 문제는 바로 '뱅크런' 위험이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새마을금고 예금 인출 사태에서 보듯이 한번 입소문이 도는 순간 예금이 일제히 빠져나가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뱅킹 보편화로 힘들게 줄 설 필요 없이 바로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점도 뱅크런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48시간 만에 파산한 것 역시 새로운 경영 환경에 기인한 바가 크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현재 금융권은 부동산 PF에서 발생한 부실로 연체율이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 대출 회수로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뱅크런 위험이 관측되지는 않지만, 언제든 재발 가능한 위험을 내포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신속한 개입 준비와 함께 기준금리 인하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동산 PF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제2금융권의 대출 회수 흐름을 멈추기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환시장의 불안정성, 그리고 수도권 일부 지역 부동산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이 부각되고 있어 쉽지 않은 선택임에는 분명하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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