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반이민·무슬림’ 혐오 시위에…시민들 ‘극우 반대’ 맞불 집회

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월섬스토어 지역에서 극우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에서 흉기로 어린이 3명을 숨지게 한 10대 용의자에 대한 허위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극우 시위가 일어나자, 7일(현지시각) 이들에 반대하며 “반인종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전역에서 극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영국 런던과 브리스틀, 리버풀, 버밍엄, 브라이턴 등에선 수백명의 시민들은 이날 거리로 나와 “난민을 환영한다”, “인종주의에 맞서자”, “파시스트 아웃”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민자 센터와 이들의 변호사 사무실 앞에서 100여개의 극우 시위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들을 막아 세우기 위한 시위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경찰은 극우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력 6000명을 동원하는 등 만전을 다했다.

각 지역에선 극우 단체의 시위 장소로 예정된 곳에 사람들이 나와 맞불을 놓으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영국의 인종차별 반대 관련 인권 단체와 노동, 교육 단체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런던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려 경찰은 이 지역에 따로 경력 1300명을 배치하는 등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런던 동부 월섬스토어에선 1000여명이 나와 구호를 외쳤다. 리버풀에선 이민자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교회에서 수백명이 인간 방패를 만들어 교회를 보호하고자 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보도했다. 여기 참여한 마리아 오라일리(75)는 ‘나치 반대’라고 손수 적은 손팻말을 들고 나와 가디언에 “우리는 이곳에 합법적으로 와 있는, 취약한 이들을 공격하는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그들(극우)은 무지하고, 증오를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밍엄의 난민·이주민 센터 밖에서도 200여명이 모여 “(이곳에서) 파시스트 쓰레기를 몰아내자”며 인종차별에 반대 메시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이곳을 지켰다.

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월섬스토어 지역에서 극우 시위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런던/AP 연합뉴스

결국 이날 대규모로 열릴 것으로 예정된 극우 단체들의 집회는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더럼과 블랙풀, 브라이턴 등에서 집회가 열렸지만, 경찰이 지난 주말 열린 극우 집회에서 폭력 혐의가 있는 용의자에 대한 체포에 속도를 내고, 극우 반대 시위대가 결집하면서 규모가 쪼그라든 것이다. 경찰은 지난 3∼4일 반이민과 반무슬림주의를 내걸며 시위를 하던 도중 경찰을 공격하고 주변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적인 행동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현재까지 400명 이상을 체포한 상태다. 경찰은 이날도 칼라일 지역에서 폭력과 공공 무질서를 조장하는 온라인 게시물을 올린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 2명과 30대 남성 1명을 체포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이들은 종교적 증오와 폭력을 부추길 수 있는 콘텐츠를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이번 극우 시위 배경엔 소셜 미디어를 통한 허위 정보 확산이 꼽히는 가운데,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은 영국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시물과 채널을 삭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지난달 29일 사우스포트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어린이 3명을 살해한 범인은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악셀 루다쿠바나(17)로 무슬림이 아니지만, 그가 난민 신청자이거나 무슬림이라는 허위 정보가 온라인에서 계속 확산돼 극우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반이슬람 극우 활동가로 유명한 영국의 토미 로빈슨은 텔레그램과 엑스(X·옛 트위터) 등을 통해 “무슬림 대량 추방”을 요구하며, 흉기 살인 사건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그의 엑스 팔로워 수는 80만 명을 넘는다.

7일(현지시각) 영국 북동부 뉴캐슬어폰타인 지역의 이민국 사무소 근처에서 극우 활동가들의 반이민 시위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뉴캐슬어폰타인/AFP 연합뉴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