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즈가 부통령 후보가 된 ‘이상한’ 이유 [세상읽기]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얼마 전 미국에서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미네소타 주지사 팀 월즈가 아침 뉴스에 출연해 인터뷰하면서 트럼프와 밴스는 “이상해!”(weird!)라고 말한 것이다. 앵커들은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은근슬쩍 웃었지만 이 잠깐의 논평은 실은 너무나 웃겼던 것이었다! 그 대목을 잘라낸 영상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하더니, 하루 만에 트럼프와 밴스의 선거운동을 어쩔 줄 모르게 하는 비장의 무기로 떠올랐다. “트럼프는 이상해.” “진짜 이상해!”
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의 팬덤 ‘케이(K)-하이브’(K는 카멀라를 뜻한다)는 트럼프와 밴스가 망언을 할 때마다 토를 달기 시작했다. “이상해.” 그저 리트위트하면서 한 단어만 덧붙이면 되니까 정치 비평이 이보다 더 쉬울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 역시 방송에서 “그들의 정책은 이상하다”, “그들의 스타일은 이상하다”고 앞다투어 논평하는 것으로 선거운동 전략을 바꾸었다. 그 메시지가 상상 이상으로 초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해리스조차 유세 현장에서 “그들은 그냥 이상해!”라고 말했고,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대체 이게 왜 먹히는 걸까? 언제나 계몽적이고 올바른 말만 설파하던 진중한 ‘엘리트 진보’의 목소리가 이렇게 가벼워도 괜찮은 걸까?
정치평론가 에즈라 클라인은 “공화당은 이상하다”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선거 전략은 예전에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 지지자를 일컬어 “개탄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 엄청난 역풍을 불러왔고 실제로 선거에서 졌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개탄스러운”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완벽한 엘리트 진보의 목소리였다. 더 교양 있고, 더 지적이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사람이 못난 트럼프 지지자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아닌가. “무식하고 딱한 인간들.” 이런 메시지는 반박하기에 딱 좋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토록 정당화하고 싶어 했던 피해자 정서와 박탈감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예시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말은 그들의 역린을 정확하게 건드렸고 자존심이 긁힌 사람들은 단단히 결집했다.
하지만 “너 좀 이상해”는 어떤가. 진지하게 반박하면 오히려 더 이상해진다. “아니야, 나는 이상하지 않아!”라고 정면 돌파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까 계몽적 설교를 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엘리트 진보의 언어도 아니고 내려다보는 시선도 전혀 없다. 모두의 그 느낌을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 무엇보다도 케이-하이브를 비롯한 청년 세대가 쉽게, 즐겁게, 그리고 더 많이, 정치적 표현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상해”는 밈(meme)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모두 담고 있는 메시지다.
월즈는 “이 메시지가 왜 이렇게까지 효과적인지”를 묻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공식적인 메시지는 트럼프를 “민주주의의 존재론적 위협”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헌법, 자유, 인권과 같은 모든 핵심 가치를 파괴할 위험인물이라는 담론이다. 대단히 심각하고 무거운 톤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는 거대담론이다. 월즈에 따르면 이런 전략은 오히려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준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강한 남자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그가 진짜로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월즈는 가볍게 가자고 한다. 트럼프의 메시지를 “쪼그라들게” 해야 한다고. 비대한 자아를 가진 두 남자를 작게 만드는 전략이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해리스가 “이상해!”라고 유쾌하게 말하는 모습은 이런 전략과 꽤 어울린다. 케이-하이브의 주축인 젊은 여성들은 이 상황을 즐기면서 폭발적인 밈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근엄한 메시지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온라인 하위문화와 궁합이 맞았다고 할까? 여러 설문조사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도 대결은 박빙이었지만, 청년 유권자만 떼어서 보면 해리스가 트럼프를 벌써 24%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다. 이 ‘현상’의 주역은 여성들이다. 그리고 ‘이상한’ 선거 전략 덕분에 월즈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라 부통령 후보가 되었고 지지자들은 흥분 상태다. 조 바이든 후보 사퇴 이후 민주당에 활기가 넘치는 지금, 부디 해리스가 새롭고 역동적인 선거판을 이끌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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