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번아웃'되는 근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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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윈은 미국 유력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한 곳에 다닌다.
그는 새벽 5시에 전화로 일을 시작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 다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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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셔윈은 미국 유력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500대 기업 중 한 곳에 다닌다. 그는 새벽 5시에 전화로 일을 시작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 다시 일한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 숙제를 감독한다. 애들을 재운 뒤에는 자정까지 회사 일을 한다. 애 둘을 키우는 이혼남인 그는 그렇게 주당 70시간을 노동한다. 만성질환인 심장병을 앓아 휴식과 운동이 절실하지만 해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일터에서 버티려면 어쩔 수 없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늦은 식사를 하면, 일어나서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너무 피곤하거든요."
24시간 전투태세로 일하는 이들은 셔윈뿐 아니다. 기술 발달로 '상시 연결'(Alywas-on), '상시 근로'(Always-working) 문화가 기업에 자리 잡으면서 근로자들은 일에 파묻혀 지내기 일쑤다.
에린 L. 켈리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 교수와 필리스 모엔 미네소타대 사회학과 교수가 함께 쓴 신간 '정상 과로'(Overload)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 직원 상당수는 이른 아침 해외 동료와의 통화, 밤 10시에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 요청, 언제 어디서나 날아오는 이메일과 문자, 왓츠앱 같은 인스턴트 메시지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는 통상적 업무 시간 외에도 회사 일을 한다.
팬데믹 이후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 출퇴근 시간을 각자 결정하는 유연근무제 등 진보적인 근무 체제가 일터에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은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출근 준비, 출퇴근, 현장 근무, 퇴근이라는 루틴이 사라지면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도 노트북을 열고 일하기가 쉬워져 업무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과로는 점점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 과로가 정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인공지능(AI)이 도입되는 등 기술 발전 탓이 크다. AI가 인간을 점차 대체하면서 일자리는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동료들이 줄면서 각 개인에게 걸리는 업무 로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카카오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네트워크는 회사와 근로자를 24시간 내내 '한 몸'으로 엮는다. 그 결과, 상당수 노동자가 수면의 질 저하, 지속적인 스트레스,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배우자와 자녀는 상사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보고 있는 그들이(남편·아빠) 자기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화를 내죠." (대기업 관리자 타나이)
저자들은 "업무 관행과 요구 사항을 조정하지 않은 채 재택근무 등을 시행하면 직원의 건강과 삶의 질은 오히려 악화할 수 있으며, 그 가족에게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먼저 직장 내에서 업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STAR'(Support:지원, Transformation:혁신, Achievement: 달성, Results: 결과) 전략 도입을 조언한다.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업무를 수행할지를 직접 결정하고, 직원과 관리자가 개인·가족생활에 대한 바람과 목표에 대해 적극적인 대화를 나누며, 가치가 낮은 업무를 줄이는 것 등을 뼈대로 한 전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도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관행과 회사문화와 같은 '본질'을 바꿔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즉, 회사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직원과 관리자가 요청하는 것은 언제든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기대"를 줄이지 않는다면, 어떤 새로운 제도도 무용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음. 백경민 옮김. 45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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