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_비욘더게임] 인생역전 스토리 쓴 30세 국가대표, 결국 지난날도 값진 시간이었다

김형중 2024. 8. 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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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 축구가 무대에 서진 못했지만 다른 종목은 챙겨본다.

축구계에는 주민규라는 늦깎이 대표선수가 있다.

비교적 늦게 축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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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 축구가 무대에 서진 못했지만 다른 종목은 챙겨본다. 사격에선 2명의 10대 선수가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양궁도 20세가 채 되지 않은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어린 나이에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들이다. 피땀 흘리는 노력은 당연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한몫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의 활약에 열광하며 ‘난 저 나이에 뭐했지?’라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뒤늦게 빛을 보는 선수들도 존재한다. 일찍이 재능을 꽃피우진 못했지만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런 완행열차의 끈기와 노력을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보에 감정이입이 되어 응원을 하게 된다.

축구계에는 주민규라는 늦깎이 대표선수가 있다. 지난 3월 33세 333일의 나이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6월에는 골키퍼 황인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30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프로 데뷔 8년 만의 일이었다.

비교적 늦게 축구를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형을 따라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에는 공격수였지만 팀내 취약 포지션이었던 골키퍼로 전향했다. “그때는 좀 창피했다”라는 게 황인재의 설명이다. 골대 앞에서 멋지게 골을 넣고 싶은데 골대 앞에서 공을 막으라고 하니 어린 마음에 그런 마음이 들었나 보다.

골키퍼로 대학에 진학한 황인재는 2016년 광주FC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 벽은 높았고 매 시즌 이적을 선택했다. “처음 프로에 들어갈 때부터 좋은 상황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다. 저를 원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억지로 팀에 들어간 것 같다” 자신을 둘러싼 안팎의 상황으로 저니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안산그리너스와 성남FC, 그리고 다시 안산을 거치며 기회를 얻었고, 2020년 1부 리그 포항에 입성했다.


포항에서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언제나 백업 골키퍼에 머물렀고 FA컵(현 코리아컵)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김천상무였다. 이미 나이도 상무 입대의 마지노선이었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김천에 가기 전까지 경기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경험이 없으니 골대 앞에 서면 두려웠다. 김천에서는 눈치를 하나도 안 보고 동기들과 축구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김천에 가기 전엔, 프로 신분이지만 아마추어나 다름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느낌이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러 간 것이 아니었고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그 시간을 정말 소중히 보냈다. 한 경기라도 더 뛰고 싶었고 많이 성장해서 돌아왔던 것 같다”

전역 후 포항으로 돌아온 그는 2023시즌 붙박이 주전이 되어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시즌 막판 FA컵 결승에서도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마음은 불안했다고 한다. 그의 다음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김천상무 합격 순간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좋았지만 1년을 통으로 따지면 작년이 좋았다. 근데 그것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작년 1년은 진짜 하루도 편하게 있지 못했다. 공식 경기를 한 25~30경기 정도 뛰면서 ‘오늘 못하면 바뀐다’는 생각으로 하다가 30경기가 지나니깐 ‘이제는 주전이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기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더 좋은 퍼포먼스가 나왔던 것 같다. 9월까진 ‘실수만 하지 말자’며 버텼는데 그 이후로는 ‘다음 경기도 내가 뛰겠다. 이제 주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든든한 수문장을 보유한 포항은 최소실점 1, 2위를 다투며 우승 경쟁 중이다. 황인재의 활약은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으로 이어졌다. 15년 이상 축구를 하며 항상 꿈만 꾸던 이야기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훈련 중 대표팀 선발 소식을 들었던 황인재는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발표 전에 에이전트가 된 것 같다고 말해줬고 훈련 도중에 저희 장비 담당 스태프가 명단이 떴다고 말해줬다. ‘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운동이 끝났는데 (한)찬희가 슈팅을 정말 세게 찼다. 그게 제 머리에 맞아서 뇌진탕 느낌이 왔지만 그때도 웃고 있었다. 그런데 기쁘기도 했지만 먹먹하면서 우울해지기도 했다.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팀 발탁 소식을 들었을 때 들었던 감정과 함께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단 저는 목표를 세웠었다. 또 그 목표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그 계획을 꾸준히 쌓아 올리다 보면 목표에 다가설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남들이 놀 때 그렇게 놀 시간이 없었다. 더 운동했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래서 이루어진 것 같다”

비록 서른 줄에 접어들어 이룬 목표지만 그 과정이 길었고 떳떳했기 때문에 가치는 더 컸다.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계획을 짜 실행하고 노력한다는 것,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은, 축구가 아닌 세상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이자 정석이다. 늦깎이 국가대표 황인재의 지난날은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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