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님'은 그저 '이모님'일 뿐
"저희 이모님은 정말 딱 애만 봐줘요. 친구네 이모님은 설거지며 반찬까지 만들어주신다는데…"
어느 날 한 후배 기자가 했던 넋두리가 생각났다. 필리핀에서 외국인 가사 관리사 100명이 들어오던 날, '업무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소환된 기억이다.
'가사' 관리사라는 이름이 더 혼동을 주는 것 같다. 사실 6개월 시범사업으로 필리핀에서 들어온 이들은 케어기버(Caregiver) 자격증을 보유한 이들이다. 우리로 치면 요양 관리사 자격 정도로 '돌봄'에 특화된 인력이다.
즉 '아이 돌봄'이 주 업무로, 통상 우리 사회에서 '이모님'이 하는 역할로 보면 큰 무리가 없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이모님이 그랬듯 아이 돌봄의 방식, 또 어디까지를 돌봄으로 볼 것인지는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필리핀 이모님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선선히 설거지나 청소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딱 아이만 보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도 외국인 가사 관리사의 업무에 대해서는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 가족에 대한 가사 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돌봄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다만 아이가 잠을 자거나 등원했거나 하는 경우, 즉 안전이 확보된 경우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정리하거나, 아이 식기를 설거지하는 김에 옆에 있는 어른이 먹은 식기도 같이 세척하는 수준, 아이 빨래를 돌리는 데 옆에 있는 어른 빨래도 같이 넣어서 돌리는 정도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모님'을 채용할 때 발생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서비스 제공 기관이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한다는 점은 진일보한 부분이다.
잘 운영하면 사용자가 가사 관리사에게 대놓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문제도 막을 수 있고, 또 이용 가정에서도 불만이나 요청 사항을 더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 같다.
사실 필리핀 이모님에서 '필리핀'을 떼고 이해하면 많은 문제들이 풀린다. 그들도 그냥 이모님인 것이다.
비용에 대한 논란도 그렇다. 기존 이모님 비용이 통상 월 300~350만 원인데 필리핀 이모님은 8시간 기준 월 238만 원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옵션이 더 생긴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이들은 숙소에서 출퇴근하며 아이를 돌보게 된다. 이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모님과 같다. 급여에서 숙박비와 교통비, 식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것이 이들의 수입이 된다. 월 119만 원 수준인 4시간만 일하면 대부분의 급여는 비용으로 들어간다. 나머지 4시간까지 채워야 100만 원 조금 넘는 수입을 저축하거나 송금할 수 있다.
임금을 너무 낮게 책정하면 굳이 비행 거리가 먼 한국까지 가사 관리사로 들어오려는 인력이 없을 것이고, 들어오더라도 조건이 더 좋은 공장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돌봄 수요는 못 채우고 불법체류자만 대거 발생하는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현실적으로 임금을 어느 정도 맞춰줄 필요는 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정입주 보모의 경우는 이들의 임금이 월 100만 원 정도로 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의 항공료, 수속 비용, 휴가비 등을 가정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또 집에 최소 방 3개는 있는 여유 있는 집이라야 보모를 채용할 수 있다. 무조건 홍콩 등의 사례만 들어서 우리 조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그간 50대 이상 여성들이 도맡아 하던 '이모님'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18만 명을 넘던 가사서비스 종사자는 2022년 11만 명대로 줄어들었다. 가사도우미 시장은 신규 인력 유입은 거의 없는데, 기존 인력은 고령화되면서 시장에서 빠져나간다. 그만큼 비용은 올라가게 돼 있다.
육아뿐만 아니라 간병인도 마찬가지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간병 인력 수요는 늘어나는데 간병 인력은 한정돼 있다 보니 간병비가 치솟는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든 노인이든 돌봄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 6개월 시행되는 시범사업이지만, 미래 돌봄 수요에 대응할 해결책 중 하나로 외국인력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지난 6일 우리나라에 입국한 필리핀 가사 관리사 중 한 명인 글로리(32) 씨는 필리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대졸자다. 그는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 한국 문화를 많이 알고 싶어서 지원했고, 주변에서도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푹 빠진 청년이었다.
글로리 씨가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호감이 앞으로 6개월 동안 적어도 줄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 돌봄 수요와 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미래에 대비할 한 수를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필리핀 이모님에서 '필리핀'을 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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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258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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