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진정 지배구조 모범생일까?
우리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체제를 ‘선진적 지배구조’로 판단하며 주요 그룹들에 지주회사 전환을 요구했다.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출자구조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엘지(LG)그룹과 에스케이(SK)그룹 등은 차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반면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지금껏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터라 엘지와 에스케이에 견줘 지배구조가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스케이그룹이 ‘지배구조 모범생’이란 평판을 들은 건 지주회사 체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맥락에서다. 그룹 총수 최태원 회장은 2014년부터 이에스지(ESG)경영을 주창했다. 2016년엔 에스케이그룹 경영 관리 체계(SK Management System)에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란 조항을 명문화했다. 오늘날엔 너나 없이 이에스지 경영을 논하지만 당시로선 매우 이례적이고 발빠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 모범생 에스케이’란 평가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본다. 출자구조만 보고 지배구조에 성적을 매기는 건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에스케이는 여전히 극복해야할 과제가 여럿 있다.
불투명한 ‘형제 경영’
첫째 ‘형제 경영’이란 이름 아래 이뤄지는 불투명한 의사 결정이다. 에스케이그룹은 사촌 형제(고 최종건 전 회장의 아들 최신원·최창원, 고 최종현 전 회장의 아들 최태원·최재원)가 함께 이끌어왔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형제 경영의 기원은 자못 아름답게도 보인다. 1998년 최종현 전 회장 별세 당시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은 터였다. 사촌 형제들끼리 논의해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제일 큰형인 고 최윤원 당시 에스케이케미칼 회장이 후계자를 고사하며 “우리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라며 최태원 회장을 추천했다고 한다. 가족 지분을 최태원 회장에게 몰아주고 그룹 회장에는 전문경영인도 앉히자는 제안이 나왔다. 전문경영인 손길승 당시 부회장이 회장으로 추대된 까닭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현 전 회장 별세 뒤 에스케이는 총수 최태원과 가신 손길승 체제가 성립되는 듯했다.
실제로는 사촌 형제가 모두 경영에 참여하는 등 양상은 훨씬 복잡하게 전개됐다. 지주회사 전환 전까지는 최태원(㈜SK, SK텔레콤, SK해운), 최재원(SK E&S), 최신원(SKC), 최창원(SK케미칼, SK건설)이 그룹 경영을 나눠 맡았다. 2007년 지주회사 전환 뒤에도 형제 경영은 이어졌다. 사촌형제 간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나온 배경이다.
2018년엔 형제 경영을 좀더 두텁게 할 수 있는 결정도 나왔다. 최 회장은 그 해 그룹 지배권 유지의 핵심인 지주회사 ㈜에스케이 보유 주식 중 1조원 규모를 사촌 형인 최신원 당시 에스케이네트웍스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에스케이 수석부회장 등에게 증여했다. 최 회장 쪽은 20년 동안 자신을 묵묵히 도와준 형제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아름다운 우애라고만 단정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재계 서열 2위 거대 상장기업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의 배경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다. 알려진 것이 곧 진실은 아니다. 우리는 당시 지분 증여외에도 에스케이의 굵직한 의사결정의 속살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6월 최태원 회장 이혼 항소심 판결 이후 에스케이그룹이 형제 경영을 강화하며 해법을 모색한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실제 최 회장은 한발 물러나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룹의 고강도 쇄신 작업은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에너지 사업 구조개혁은 최재원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수석 부회장이 맡았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쇄신안의 핵심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과 에스케이이엔에스의 합병이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자회사로 자금난에 처한 에스케이온에 대한 자금 지원이란 목적외에 이 합병의 또다른 배경에 에스케이온의 경영진이기도 한 최재원 수석 부회장의 입지도 고려된 것 아니냐는 심증은 있지만 실제 그러한지는 ‘외부자’는 알지 못한다. 회사가 공시한 합병 목적은 본원적 경쟁력 강화, 안정적 수익 구조 구축,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등 좋은 말로만 가득할 뿐이다.
총수 이혼소송이 왜 그룹의 일이 되나
둘째, 총수의 개인사에 그룹자원이 동원되고 있다. 나는 아무리 재벌 총수라지만 개인의 결혼생활까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1조3808억원을 배우자 노소영 관장에게 주라는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총수와 기업이 구분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총수 개인 이혼소송 기자회견에서 이형희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로 에스케이그룹 성장 역사와 가치가 크게 훼손된 만큼, 이혼 재판은 이제 회장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룹 차원의 문제가 됐다”며 “6공화국의 유무형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법원 판단만은 상고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6공의 유무형 지원을 통한 성장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에스케이그룹 평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만큼 충격적이고 새로운 사실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더 주목하는 것은 이게 최 회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총수들의 배임·횡령 재판에서 총수 쪽이 자주 사용하는 재판 전략이 총수를 감옥에 보내면 그룹에 치명적인 타격이 온다는 것이다. 공포 마케팅인데, 이와 매우 유사하게 에스케이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직접 나서서 총수 이혼 재판을 그룹 차원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이혼소송 담당 판사는 졸지에 에스케이그룹 평판까지 고려해야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간명한 출자구조에 터 잡은 이중상장
셋째, 에스케이그룹의 출자 구조도 사실은 좋지 않다고 본다. 많은 사람은 에스케이 그룹이 꽤 괜찮은 지주회사 체계라고만 생각했지 그 디테일은 잘 보지 않았다. 우선 에스케이그룹 계열사는 2018년 101개에서 올해 219개로 6년 만에 2배 남짓 늘었다. 재벌 그룹 중에 가장 많다. 삼성과 현대차는 계열사가 각각 63개, 70개에 그친다. 나아가 상장 계열사가 21개나 된다. 모회사·자회사·손자회사가 상장되어 있어서 이중상장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모회사만 상장이고 나머지 자회사는 대부분 비상장사인 국외 지주회사와 크게 비교되는 지점이다.
최근에는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자회사인 솔리다임을 뉴욕증시에 상장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건 카카오그룹과 묘한 데자뷔다. 카카오그룹이 계열사 문어발 확장 등 여러 가지 지배구조 문제로 내홍을 겪던 2022년 하반기 일이 떠오른다. 전반적인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진 못할망정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인 라인온하트스튜디오의 상장에 나선다는 얘기가 당시에 나왔다. 결국 이중상장 문제로 카카오게임즈의 주가가 내려가면서 상장이 철회됐다. 지금 에스케이그룹의 전반적인 의사결정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과연 그룹계열사를 101개에서 219개까지 늘리고 지속적인 계열사 이중상장을 해 온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전반적인 지배구조 위험은 관리가 되고 있는지 미심쩍다.
나는 윤석열 정권 후반기 재벌의 행동을 걱정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적기라고 보고 있는 거 같아서다. 최 회장과 에스케이그룹은 거기에 동참하지 말고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기를 바란다. 그래야 최태원 회장 본인이 주장해 온 사회적 가치 창출 경영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영학 교과서에 대표적인 이에스지 세탁(washing)의 사례로 남을 수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석열 정부 ‘친일적 역사인식’…독립기념관까지 점령하다
- 남자 태권도 58㎏ 역대 첫 ‘금’…박태준, 금빛 발차기 날렸다
- [단독] ‘묶인 환자’ 사망 양재웅 조사받는다…진료기록 진위 확인
- 안세영 ‘폭탄 직격’, 협회 ‘전면 반박’…갈등 포인트 뜯어보니
- 호주서 ‘한국식으로’ 급여 떼먹은 초밥집…100억 벌금 국제망신
- 누가 되든 윤의 사람…검찰총장 후보 4명 면면
- 광복회, 대통령 광복절 행사에 시위 경고…‘현대판 밀정’ 임명 반발
- 임성근 ‘명예전역 시도’ 실패…해군·국방부, 불수용 결정
- 경제위기에 극한대결 부담…‘이재명-대통령 회담’에 한동훈 ‘긍정적’
- “안세영 지명 한의사 1100만원 들여 파리로”…반박 나선 배드민턴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