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대생이 온다 [똑똑! 한국사회]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부모님을 모시고 모교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두 분 모두 지팡이를 짚은 채로 외래에서 접수로, 검사실로, 주사실로, 다시 통증치료실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복잡한 미로 같은 병원 구석구석을 헤매 다녔다. 그곳에서 전공의 3년간을 제집처럼 살다시피 한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맸고 지나가는 직원에게 물어물어 겨우 목적지를 찾아갔다.
담당 교수는 벽에 붙은 그림을 기나긴 막대로 가리키며 검사 결과를 랩 하듯이 빠르게 설명했다. 잘 들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 그 얘기는 외계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의사도 어머니가 난청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설명은,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는 병원의 복도를 닮아 있었다.
외래 진료실 앞에는, 아버지 말처럼 노인들이 ‘천지삐까리’였지만 정작 병원 이용자의 기준은 건강한 젊은 성인이다. 잘 듣고 잘 이해하고 잘 걷고 잘 찾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잘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을, 잘 듣지도 이해하지도 걷지도 못하는 수많은 노인이 이용하고 있었다. 병원에 다니는 경험 자체가 아픈 사람과 노인에게는 또 하나의 상처였다.
통증 주사를 맞고 나오는 길에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웬만해서는 손을 잡지 않는 분인데 병원이, 그리고 나이 들고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으면 손을 꽉 잡으실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그 손을 끝까지 잡아드려야 하는데 끝까지 잘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누군가는 이를 효도라며 미화하겠지만 효도는 기나긴 노동에 가깝고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지만 과연 한달은 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며칠 전 방문진료 가서 만난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매달 대학병원에 약을 타러 가야 하지만 차를 운전할 수 없었고 외진 곳에 살아 버스도 없었다. 서울에서 버스운전 한다는 아들이 매번 휴가를 내어 차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아마도 전국에 이런 노인이, 이런 자식이 ‘천지삐까리’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삶과 노동을 갈아 넣어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고려장에 관한 이야기에는 아들의 등에 실린 부모가 나온다. 자신을 산에 버리고 가는 아들이 내려갈 길을 잃을까 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해 두었다는 부모의 얘기는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된다. 방문진료 가서 만난 대부분의 노인이 ‘죽는 건 안 무서워. 죽을 때 자식들 고생시킬까 봐 그게 제일 무섭지. 그냥 팍 죽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몇년이고 질질 끌다가 죽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치매가 오면 자진해서 요양원에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노인도 많다. 그 지난한 과정에 필요한 병원비 때문에, 간병비와 돌봄 노동 때문에 혹시라도 자식이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부모의 마음은 고려시대로부터 천년이 지난 이곳에도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들의 어깨에 저마다 부모님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곳이 어디일까. 우리의 등에 업힌 부모는 알고 있다. ‘거기 한번 실려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못 나와.’ 옆집 할머니가 119에 실려 가고 난 뒤 요양원에 갔다는 소식을 전해드리자 할아버지가 한 얘기다. 진심으로 돌보는 요양원도 많다 말씀드려도 고개를 돌린다. 알면서도 가는 부모의 마음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식인 우리의 마음은 정말 어찌할 것인가.
방문진료 가서 만나는 노인들 대부분이 여든이 넘은, 40년대생들이다. 마을에서 하나둘 사라져 가는 노인들을 생각하며 진료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노을이 지는 강가로 산책을 간다. 노을이 질 때 강은 더는 파랗지 않고 구름은 더 이상 하얗지 않다. 한낮의 빛깔, 한창때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우리의 노년도 어쩌면 비슷할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강가에 서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의 빛깔을 잃어버리며 사라지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깨닫는다. 노년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우리가 평생을 써온 삶이라는 글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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