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김민기, 그 자유의 바람으로

한겨레 2024. 8.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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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ㅣ ‘뒷것’ 김민기를 기리며
백원담 성공회대 석좌교수
‘지하철 1호선’ 중국 공연 당시인 2002년 7월 중국 잡지 ‘시계’(視界)에 실린 김민기 특집. 백원담 교수 제공

불현듯 다녀가시는가. 폭염에 지친 하늘이 우르르 열리더니 단비가 쏟아져 내린다. 먼길 떠나시던 날도 그 빗속 산행의 열망처럼 밤새 폭우가 내렸었다. 벌써 보름. 잘 지내시는지.

아직 아시아의 친구들에게는 부음을 전하지 못했다. 그 오랜 벗들은 국제회의 등에서 만나면 ‘김민기 선생은 괜찮으신지,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 늘 궁금해한다. 지난해 방한했던 중국 작가 위화, 이번에 자신의 사상사 저작 한국어판 출판 기념 국제회의로 내한한 왕후이 중국 칭화대 교수도 모두 그랬다. 대만의 천광싱 교수, 먼저 가신 일본의 사카모토 히로코 교수 등 다들 ‘지하철 1호선’을 보았고, 김민기 음반을 즐겨 들으며, 어린이 음악극의 작업들이 한국과 아시아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진감해왔던 것이다.

2000년 위화 작가가 방한해, 세계작가회의 등 공식 일정은 물론 김정환·공지영 작가와 의기투합했다. 전인권 공연을 매일 다녀왔으며,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하고 연출자 김민기와 회동했다. 귀국 뒤 위화는 한국의 ‘찐친’들과 사회문화의 활력에 대해 끊임없이 전파했고, 글로도 써냈고, 아예 ‘지하철 1호선’의 중국 공연을 추진했다. 그 이듬해 정말 ‘지하철 1호선’이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으로 연장운행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 1호선’ 중국 공연 당시인 2002년 7월 중국 잡지 ‘시계’(視界)에 실린 김민기 특집. 백원담 교수 제공

당시 중국은 록 뮤지컬 공연 자체가 생소하여 정말 어려움이 많았지만, 상하이 공연 당시 관계자들은 중국의 공연 문화를 5년은 앞당겨주셨다고 경의를 표했다. 베이징 공연에서 인민일보를 비롯한 신문 매체들은 “진짜 한류가 왔다”며 환호의 기사들을 쏟아냈고, 지식문화계에서는 다투어 촌평을 써냈다. 중국 현실을 반영한 내용과 중국어 자막의 전달력은 물론 꼼꼼한 기술 전수까지 현지 공연의 문제를 온전히 감당하며 최고의 무대를 실현해내었다는 것이다. 김민기는 그간의 힘겨웠던 고충을 ‘중국민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로 의미화했다.

왕후이, 리퉈 등 중국 비판적 지식계 인사들은 토론회를 마련해, ‘지하철 1호선’에 투영된 한국 정치사회의 변화 맥락과 지구화시대 첨예한 모순 속에서 문화를 통한 한-중 문화 교통과 실질적 관계성 형성 문제를 논의했다.(‘시계’(視界), 2002) 왕후이는 록 뮤지컬과 사회운동을 밀접하게 연계해낸 대표 인물로서 김민기를 전형화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경로에 들어선 중국, 그 ‘각종의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지배구조하 예술’의 진정한 존재 양식을 김민기로부터 구한 것이다. “그 음반은, 바다의 소란을 영원한 침묵으로 되돌리는 화석화된 물고기처럼, 그 외침과 한숨이 은백색 시트에 얼어붙어 있지만, 몸속에 얼어붙은 하늘과 물, 강풍과 파도를 다시 활성화시키려는 듯 도저한 외침과 한숨은 여전히 울려 퍼졌다. 그것은 바로 자유의 갈망이었다.”(‘독서’(讀書), 2002)

2013년 10월 서울 대학로 학전에서 열린 ‘인연 그리고 동행’ 북콘서트 모습. 중국 작가 위화(왼쪽 둘째)를 비롯해 한국 작가 김정환(맨 오른쪽부터), 공지영, 가수 전인권, 백원담 교수 등이 함께했다. 백원담 교수 제공

일본 도쿄와 홍콩 등지의 ‘지하철 1호선’ 공연으로 많은 아시아 친구들 또한 감탄과 의미화 작업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계기로 나는 천막 공연을 해온 연극 활동가들과 동아시아 연극 워크숍을 함께 추동하고 지금도 지속 중이다. 이후 김민기는 ‘체 게바라’(황지쑤 극본, 장소익 연출) 한국 공연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인연 그리고 동행’(2013)의 한-중 문화 교량을 자처했다. 2017년 무렵에는 그가 몰두했던 어린이 음악극 작품들의 중국과 아시아 공연이 기획되었다. 그러나 현지 여건의 악화로 실행되지 못했고, 이제 그 작업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천광싱 교수는 아시아 현대사상가 특집(‘아시아 간 문화 연구’(Inter-Asia Cultural Studies Journal), 2021)을 마련해, ‘아시아의 백기완’으로 그 사상과 실천을 의미화한 바 있다. 이제 김민기 또한 그 사상과 예술을 아시아에 맥락화해야 할 필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정작 그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중 관계의 교착상태와 동아시아의 고조되는 전운 속에서 아시아의 벗들은 ‘아시아의 김민기’, 그 ‘아침 이슬’의 빛나는 여정을 오늘의 재난과 전쟁 위기를 넘는 진정한 평화와 자유의 바람으로 다시 길잡아내지 않겠는가.

백원담 성공회대 석좌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백원담/성공회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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