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깜깜이'…해외는 공개 의무화 추진
중국,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 구축…'ESG 소비자 선택권' 명시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가 부각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방침을 이미 정했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오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배터리법에 따라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전(全)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배터리 여권' 제도 도입을 예고한 상태다.
배터리 정보는 배터리팩에 부착된 라벨이나 QR코드를 통해 공개한다. 소비자는 홈페이지에서 배터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ACC(Advanced Clean Car)Ⅱ 규정의 '배터리 라벨링' 항목을 통해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ACCⅡ는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신차 중 무공해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의 연도별 비중을 명시하는 규정으로, 전기차의 사이드도어 등 소비자가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라벨을 부착하도록 했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EVMAM-TBRAT)을 구축하는 등 이미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는 차량 생산과 판매를 위해 공업정보화부(공신부)에 '형식승인'을 받는데 이때 배터리 셀과 팩 제조사, 구성 성분 등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소비자는 공신부 홈페이지나 전기차 제조사 애플리케이션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국제기구에서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소비자 선택권'을 명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터리 원산지나 제조회사의 출처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등 불공정한 표시로서 지양해야 한다. 식별력이 낮은 상표 사용으로 화재, 폭발 등 사고가 발생한다면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의 규정도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전기차 제조사 외에는 배터리 제조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가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를 통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배터리 정보를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배터리 인증제는 제작사들이 전기차 배터리가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를 국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고 제작·판매하는 것으로, '정보 공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화재가 난 벤츠 전기차 EQE의 경우 당초 중국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가 국토부 조사 등을 통해 10위권 업체인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 탑재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파라시스 제품이 중국 내에서 2021년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이 이뤄졌던 사실이 알려지며 배터리 '깜깜이' 정보에 대한 전기차 차주들의 불만과 우려는 더욱 커진 상태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배터리 정보 공개가 이미 세계적 추세인 만큼 국내에서도 안전한 전기차 주행과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관련 법·제도 정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동차등록증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담거나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차량 브로슈어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포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배터리 이력제'를 도입해 배터리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어느 회사의 제품이 장착되는지 등을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차량 등록증에 제작사를 명시하고 배터리 고유 번호를 차대번호처럼 공개하는 등 생산부터 처리까지 모든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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