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들으며 경기장 입장했어요”...박태준, 한국 태권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남정훈 2024. 8. 8. 06:5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거 꿈 아니죠?”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태준이 시상식 후 믹스트존에서 들어서자마자 남긴 말이다. 꿈에서도 간절히 그렸던 올림픽 무대에서 따낸 금메달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감이었다.

대한민국 태권도 대표팀 박태준이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58kg급 시상식에서 시상대에 오르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계랭킹 5위의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세계랭킹 26위)를 2-0(9-0 13-1)으로 앞서다 상대 부상으로 인한 기권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태권도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 이후 매 올림픽마다 1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3년 전 열린 2020 도쿄에서 처음으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구겨졌던 종주국의 자존심은 박태준의 금메달로 회복된 셈이다. 2016 리우 이후 8년 만의 태권도 금메달이다.

아울러 남자 58kg급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이 체급은 ‘태권도 황제’로 이름을 높였던 이대훈(現 대전시청 코치)가 2012 런던에서 은메달을 따낸 적은 있고, 2016 리우의 김태훈, 2020 도쿄의 장준이 동메달을 따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해내지 못했던 ‘금빛 발차기’를 스무살의 신성 박태준이 해낸 것이다.

한국 태권도 남자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로 따지면 세월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08 베이징의 손태진(68㎏급), 차동민(80㎏ 초과급) 이후 한국 남자 태권도 선수는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2012 런던과 2016 리우에서는 여자 67kg급의 황경선과 오혜리가 태권도의 유일한 금메달을 수확한 바 있다. 이래저래 박태준의 금메달은 한국 태권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셈이다.

상대 선수 부상 상황에 대해 물었다. 박태준은 “저의 오른발과 상대 왼발이 서로 몸통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때리려다 맞부딪혔다. 서로 정강이끼리 부딪혔는데, 원래 상대가 아프던 곳인지, 서로 부딪혀서 강한 충격 때문에 다친건지는 모르겠는데 이후 고통을 호소했다”라고 설명했다.

박태준이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경기 막판 박태준은 심판이 ‘갈려’를 선언하기 전까지 발차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마도메도프가 넘어졌고, 그 순간 관중석에선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태준은 “원래 태권도는 ‘갈려’ 전까지 발이 나가는 게 정해진 규칙 안에 있는 것이다”라면서 “시합에 집중하고 있어 야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태준의 롤모델은 이대훈이다. 자신의 롤모델조차 품어보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박태준이다. 그는 “이대훈 코치님께 고맙다는 말과 ‘제가 해냈어요. 부럽죠?’라고 물어보고 싶다. 코치님은 ‘부럽지 않다’라고 말하실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태준은 올림픽 전 각오를 밝힐 때 항상 “포디움 꼭대기에 서서 애국가를 듣는게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각오가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이에 대해 박태준은 “그 각오를 말하던 게 시상대 위에서 딱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태권도 대표팀 박태준이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58kg급 결승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와의 경기에서 충돌 후 고통스러워 하는 마고메도프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박태준은 시합 매트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음악을 들었다. 매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들어오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떤 음악을 들었느냐는 질문에 “경기 들어가기 전에는 외국 팝송의 신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결승 직전에는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었다. 오늘 태권도 역사의 한페이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말했다.
박태준이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시상식에서 결승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한 아제르바이잔 가심 마고메도프를 부축하며 시상대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따낸 금메달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태권도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태준의 인생이 담긴 것이다. 박태준은 “제가 21년을 살아온 게 이 금메달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라면서 “지난 2월 올림픽 선발전 때 ‘이번에 지면 그만둔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절박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비로소 오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너무 기쁘다”라고 설명했다.
박태준이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상대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태준은 이날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동생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박태준의 동생 박민규도 태권도 선수로 이번 올림픽을 준비할 때 박태준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해줬다. 박태준의 금메달에는 동생 박민규의 지분도 있는 셈이다. 박태준은 “1등하면 동생이 자기를 꼭 언급해달라고 했다. 언급하게 될 수 있어 기쁘다”라면서도 “동생이 금메달을 목에 걸어달라고 한다면...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믹스트존을 떠났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