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올림픽 출전권 놓고 펼친 ‘사생결단’ 승부에서의 승리...박태준의 ‘올림픽 금메달‘을 만든 결정적인 한 순간 [파리 2024]
지난 2월1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는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건 ‘한판 승부’가 열렸다. 남자 경량급의 간판스타인 장준(24·한국가스공사)과 떠오르는 유망주 박태준(20·경희대)이 남자 58kg급의 출전권을 두고 ‘사생결단’의 승부를 펼쳤다.
둘이 제주도에서 한판 승부를 벌인 이유는 간단하다. 두 선수 모두 올림픽 태권도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인 세계태권도연맹(WT) 올림픽 랭킹 5위 안에 들었기 때문이다.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을 비롯해 이 체급에서 오랜 기간 국내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장준이 랭킹 3위였고, 2023 바쿠 세계선수권 54kg급에서 우승하며 신흥강호로 떠오른 박태준은 5위였다.
누가 봐도 승부는 장준이 유리해보였다. 이전 대회 실적에서도 장준이 더 화려했고 무엇보다 상대전적에서 6전 전승으로 장준이 절대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태준이 1경기를 1회전을 내주고 2,3회전을 잡으며 승리했고, 2경기도 1회전을 내준 뒤 2,3회전을 내리 잡으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박태준은 당시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드높일 수 있도록 꼭 금메달을 따서 돌아오겠다”며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세계랭킹 5위의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세계랭킹 26위)를 2-0(9-0 13-1)으로 앞서다 상대 부상으로 인한 기권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태권도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 이후 매 올림픽마다 1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3년 전 열린 2020 도쿄에서 처음으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구겨졌던 종주국의 자존심은 박태준의 금메달로 회복된 셈이다. 2016 리우 이후 8년 만의 태권도 금메달이다.
아울러 남자 58kg급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다. 이 체급은 ‘태권도 황제’로 이름을 높였던 이대훈(現 대전시청 코치)가 2012 런던에서 은메달을 따낸 적은 있고, 2016 리우의 김태훈, 2020 도쿄의 장준이 동메달을 따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해내지 못했던 ‘금빛 발차기’를 스무살의 신성 박태준이 해낸 것이다.
이날 결승 상대인 마고메도프는 준결승에서 2020 도쿄 금메달리스트인 이탈리아의 비토 델라킬라(4위)를 준결승에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올라왔다. 박태준 역시 이 체급 현재 세계랭킹 1위이자 2020 도쿄 은메달리스트인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를 꺾고 결승에 올라왔다.
1라운드 중반 변수가 발생했다. 1라운드 중반 박태준의 오른발과 마고메도프의 왼발이 엇갈렸고, 마고메도프는 정강이 통증을 호소하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이 때문에 마고메도프의 감점이 선언되면서 박태준이 3-0으로 리드를 벌렸다.
이후에도 격렬한 난타전을 펼치던 상황에서도 박태준의 경기 운영이 빛났다. 박태준은 종료 전 46초, 40초에 연이어 상대 몸통 공격에 성공하며 7-0으로 넉넉히 점수 차를 벌리며 1라운드 승기를 굳혔다. 종료 14초를 남겨놓고 마고메도프는 이전에 당한 부상이 악화된 듯 또 다시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마고메도프가 감점 2점을 더 받으면서 박태준은 9-0으로 1라운드를 가볍게 따냈다.
이후 박태준은 상대 머리를 회전 공격으로 성공시켜 5점을 따냈고, 몸통 공격도 연이어 성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마고메도프의 감점 2점도 더해지면서 경기 종료 1분11초를 남겨놓고 13-1까지 크게 앞서나가면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상대 부상으로 인한 승리. 세리머니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고메도프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하며 박태준의 ‘승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마고메도프가 매트에서 완전히 내려가기 전까지 세리머니를 아끼던 박태준은 그가 내려간 뒤 태극기를 두르고 덤블링을 하며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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