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슐랭]③ 김치에 진심인 기업이 만든 박물관, 풀무원 뮤지엄김치간
인사동에서 외국인 대상 ‘김치 외교관’ 역할
<미슐랭(미쉐린) 가이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레스토랑 평가·안내서입니다. 조선비즈는 미슐랭 가이드처럼 국내 기업과 기관이 운영하는 과학관과 박물관의 콘텐츠 ‘맛’을 평가하는 과슐랭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과학관, 박물관에 담긴 과학 정보와 함께 기업 직원들이 추천하는 근처의 맛집도 소개합니다. 과학과 문화를 배우며 맛집도 찾는 여행 가이드로 활용하길 바랍니다.>
유네스코(UNESCO)는 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웃들이 함께 모여 김치를 담가 나누는 김장은 한국의 공동체 문화를 대표한다. 김치는 우리나라 고유 발효 기술의 집약체이다. 김치가 식품을 넘어 과학과 문화로 승화한 것이다.
국내 식품기업 풀무원이 운영하는 박물관 ‘뮤지엄김치간’은 국내에서 전해져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김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치간은 ‘김치’에 ‘간(間)’을 더해 만든 말이다. 간은 공간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수라간, 곳간 등에 쓰인다. 김치간은 김치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치간은 서울에서 유일한 김치 박물관이다. 덕분에 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김치 외교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김치는 이제 전 세계에서 친숙한 음식이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서울 여행 코스 중 하나로 김치간을 찾고 있다.
◇삼국시대 처음 기록, 조선시대에 오늘날 모습 등장
김치간은 한국의 전통 문화 상품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 인사동의 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일 찾은 인사동은 한국 문화를 보기 위해 모여든 외국인 관광객들과 젊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안내 데스크를 지나 전시관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는 김치의 역사가 소개돼 있었다. 김치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며 보낸 폐백품에 김치가 있었다고 묘사했다. 당시 김치는 ‘절이다’라는 뜻의 한자인 ‘해’로 표현됐다. 생채소를 소금이나 장에 절이는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생강과 마늘이 추가되며 다양한 향을 가진 김치가 등장한다. 이후 조선시대 젓갈을 사용하는 고급 김치와 빨간색을 내는 고추, 개량된 배추의 보급이 이뤄졌다. 현재의 김치 형태는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김치간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나경인 팀장은 “조선시대에 들어서 김치에 할미꽃을 넣어 발효 과정에서 유해균의 증식을 막거나 맨드라미 꽃을 넣어 국물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처럼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며 “김치는 당시를 대표하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김치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김치간을 많이 찾는 만큼 정보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김치간은 공신력 있는 기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김치연)와 함께 전시 내용을 검증하고 있다. 김치간이 조사한 자료를 김치연으로 보내 전문가의 감수를 받고 객관적인 정보를 덧붙인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모니터가 설치된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김장 플레이 테이블’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로 김치를 담그는 과정을 손쉽게 재현해볼 수 있다. 보는 전시가 아닌 체험하는 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외에도 전시장 곳곳에는 한국인도 생소한 재료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김치, 계절에 따라 먹기 좋은 김치처럼 다양한 테마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김치 맛의 비밀 보여주는 ‘과학자의 방’
전시장 한켠에는 ‘과학자의 방’이 있다. 현대적인 연구 기법으로 찾은 김치 맛의 비밀을 알려주는 곳이다. 발효식품인 김치의 맛은 발효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산균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유산균은 건강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을 총칭하는 용어로, 김치에는 유산균 7종이 있다고 알려졌다.
나 팀장은 “김치는 숙성 단계에 따라 여러 종류의 유산균이 증식한다”며 “묵은 김치로 찌개를 끓여야 가장 맛있는 이유도 신맛과 감칠맛을 내는 유산균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김치 맛을 내기 위한 방법이 가문 대대로 내려왔다면, 최근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김치 맛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김치 맛을 내는 데 미생물 3종의 역할이 크다.
발효 초기에는 류코노스톡(Leuconostoc) 유산균이 나타나 탄산이 주는 청량감을 만든다. 이후 발효가 진행되면서 생기는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는 김치 특유의 신맛을 더한다. 다음으로는 웨이셀라(Weissella)가 나타나며 감칠맛과 풍미를 더한다. 이 시기는 김치가 가장 잘 숙성된 ‘적숙기’라고 한다.
과학자의 방에서는 김치에 들어 있는 유산균의 현미경 영상은 물론, 유산균의 역할과 역사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김치를 숙성하는 옹기도 조상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김치간은 지역과 계절에 따라 사용하던 옹기들도 전시하고 있다. 지역과 날씨에 따라 옹기의 몸통 둘레, 높이가 모두 다르다. 이는 김치의 발효 조건과도 관련이 깊다.
특히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김치를 보관하는 방법이 다르다. 이중독 형태로 독 입구에 꽃받침 같은 구조물이 있다. 조상들은 여름철 강물을 이중독에 흘려 온도를 낮추면서도 독 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풀무원이 수집한 소장품 중에 나무로 만든 김치독도 눈에 띈다. 강원도 지역에서 사용하던 형태로, 나무 속을 파내 김치 국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했다.
◇손과 입 모두가 즐거운 체험형 박물관
김치간의 백미는 다채로운 체험프로그램이다. 관람객들이 직접 김치를 담그고 집에 가져갈 수도 있어 인기가 많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과 어린 학생들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날도 30여명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무로 담그는 깍두기를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김치간을 찾은 것이다. 나 팀장은 “하루에 3번 정도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체험 내용도 다양해 본인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과거에는 아시아 국적의 참가자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유럽에서 많이 찾는다고 했다. 나 팀장은 “‘김치 학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김치를 체험해볼 수 있어 사회공헌의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김치 맛이 궁금하다면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맛볼 수 있는 시식실도 있다. 이날 시식실의 작은 냉장고에는 김치 4종류가 한입 크기로 여러 개 준비돼 있었다.
김치간은 다른 기업 박물관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김치가 풀무원의 주력 상품 중 하나지만, 박물관 어디에서도 풀무원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다. 안내 데스크 옆 상품 판매 매장에서만 풀무원 브랜드를 볼 수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김치에 진심인 셈이다.
풀무원이 김치간을 운영하게 된 경위도 특별하다. 김치간의 시작은 일반인이 1986년 설립해 운영하던 박물관이다. 하지만 박물관이 운영난에 빠져 폐관을 고려하던 중 풀무원이 나서 인수했다. 이후 김치간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김치간은 수차례 이사를 거듭하다가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인사동에 있는 만큼 주변에는 맛집도 많다. 김치간 직원들은 박물관을 둘러본 후 갈비솥밥 정식으로 유명한 식당 도마에서 식사할 것을 추천한다. 김치와 잘 어울리는 솥밥과 갈비를 반찬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도마는 워낙 인기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만큼 맛을 보장한다고 했다.
과슐랭 별점
자체 콘텐츠(2/3) ★★ 다양한 전시품과 체험 프로그램이 풍성, 다소 좁은 전시 공간은 아쉬워
주변 연계(2/2) ★★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접근성이 우수한 편, 인사동 거리에서 다양한 볼거리도
전체 평가(4/5) ★★★★ 늘 식탁에서 보던 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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