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 못 꺾은 열정…유인촌 장관, 충남 홍성 동행기
안회당-광천 김-토굴 새우젓-로컬 맥주-전기 자전거-문당환경농업마을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신세계 관계자, 문체부와 3자 지속 협력 약속
유 장관, 역사·전통 지키는 홍성군 민관 치하·귀촌 택한 청년 창업자 찬사
[홍성=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일전에 아버님도 오셨어요."
"아…. 하하하."
젓갈 업체 대표가 너스레를 떨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유 장관은 1일 충남 홍성군을 찾아 '광폭 행보'를 펼쳤다.
경남 밀양시, 강원 강릉시, 경기 수원시, 경남 창원시, 통영시, 강원 춘천시, 동해시의 뒤를 잇는 '로컬100 보러 로컬로 가요!'(로컬로) 8번째 캠페인을 몸소 진행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문화도시 승인 대상지'를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로컬100'은 문체부가 총 100가지 '지역 문화 매력'을 선정해 2년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10월 '명소'(58곳), '콘텐츠'(40개), '명인'(2인) 등이 뽑혔다.
홍성군에선 홍동면 '문당환경농업마을'이 '명소'(문화마을·거리·상권)로 영광을 안았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은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인 '지역 중심 문화 균형 발전'을 선도하는 모델이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기초 지방자치단체 13곳을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 계획 승인 대상지'로 가려냈다.
문체부는 이들이 1년간 펼친 예비 사업 추진 실적을 12월 심사(주관 문화도시심의위원회)해 '대한민국 문화도시'를 최종 지정한다.
선정된 지자체에는 3년간 각각 200억원(국비 100억원·지방비 10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홍성군은 승인 대상지 중 한 곳이다.
유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홍성군청 내 '안회당'(安懷堂)에서 이용록 군수 등 홍성군 관계자들과 만났다.
안회당은 조선 시대 홍주목(홍성군의 옛 이름)의 동헌(지방 수령의 집무실)이다.
조선 제19대 숙종 때인 1648년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에어컨은 설치돼 있지 않고, 20명 가까이 둘러앉은 실내엔 선풍기 한두 대가 전부였다. 현지에 '폭염 경보'(기온 34℃)가 내려졌을 정도로 건물 안팎이 펄펄 끓었다.
하지만, 그는 더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지역 특산물과 유기 농업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문화도시' 비전을 실현하려는 홍성군 계획을 1시간 넘도록 경청했다.
홍성군에 관해 이해의 폭을 넓힌 유 장관은 광천읍으로 향했다.
광천읍은 조선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옹암포구를 앞세워 교통과 상업 중심지로서 번성했다. 2000년 '보령 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물길이 끊겼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많은 지역은 급격히 쇠락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은 여전히 '내륙 어촌'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 양대 축이 김의 대명사 격인 '광천 김', 옛 옹암포구에 자리한 토굴 40여 곳에서 숙성된 '토굴 새우젓'이다. 홍성군은 두 특산물을 알리고자 매년 10월 중순 광천시장에서 '광천 김·토굴 새우젓 대축제'를 개최한다.
유 장관은 먼저 광천 김 생산 업체를 찾았다.
전 세계적인 'K-푸드'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1300억원 넘는 수출고를 올린 '검은 반도체'에 관해 설명을 듣고, 대표를 비롯한 업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위생복 차림으로 '조미 김' '김밥 김'은 물론 김을 활용한 '스낵' 종류까지 무려 80여 종에 달하는 김 제품이 쉴 새 없이 생산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스크 뒤 유 장관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어쩌면 대견스러워하는 듯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토굴에 도착한 그는 젓갈 업체 대표의 안내를 받아 한여름에도 영상 14~15℃, 습도 85%를 유지하는 '천연 냉장고' 곳곳을 둘러봤다.
그는 자연 발효한 새우젓을 시식하면서 맛에 감탄하는 한편, 이를 위해 3개월간 염도를 25%로 고수하느라 늘 애쓰는 생산자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곳은 2016년 10월 전파를 탄 KBS 1TV 교양 다큐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도 등장했던 곳이다. 진행자 최불암 배우 역시 토굴을 누비면서 새우젓 발효 과정을 살폈다.
앞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MBC TV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유 장관은 최 배우가 맡은 '김 회장'의 둘째 아들 '용식'을 열연해 인기를 끌었다.
'부친'이 찾은 곳에 약 8년 만에 '차남'이 온,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유 장관은 오후 1시께 광천읍 한 식당에서 이 군수를 비롯한 홍성군 관계자, 지역 소상공인들과 김과 새우젓, 갈치젓, 어리굴젓 등 젓갈류, 한우 불고기 등 현지 특산물을 활용해 만든 음식을 맛보며, 지역 미각을 내국인을 넘어 외국인 대상 관광 상품으로 키우는 '음식 관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홍성군 겨울 특산물인 '새조개'는 문체부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7월 발표한 '국가대표 음식 관광 콘텐츠 33선' 중 '지역 대표 제철 식재료'에 이름을 올렸다. 홍성군은 서부면 남당항 일원에서 매년 1~2월 '남당항 새조개 축제'를 열고 있다.
식사를 마친 유 장관은 홍동면 한 양조장을 찾았다.
귀촌 청년 창업자인 양조사에게 홍성군에서 유기농법으로 길러진 쌀, 스펠트 밀, 호밀 등 갖가지 곡물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로컬 맥주'들을 소개받으며, 흥미를 나타냈다.
이 자리에는 유통 대기업 신세계(대표 박주형)가 추진하는 '로컬이 신세계' 프로젝트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신세계는 전국 각 지역에서 특산물을 발굴한 뒤, 유명 셰프와 연계해 최고급 메뉴를 개발한다. 이를 통해 특산물 가치를 높이고, 전국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될 수 있게 하고 있다.
유 장관은 '전기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그야말로 태양이 작열했으나, '관광'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홍성군 로컬 관광 상품인 '가이드와 함께하는 전기 자전거'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자전거 마니아다운 능숙한 실력과 전기 모터의 힘으로 약 15분간 논길을 달려 문당환경농업마을로 향했다.
신세계, 홍성군 관계자 중 희망자들도 페달을 가볍게 밟으며, 뒤를 따랐다.
라이딩을 마친 뒤, 유 장관은 "자전거를 탈 때 농로로만 온 것이 아주 좋았다"면서 "홍성군에서 농로들을 코스로 잘 연결해 자전거 길로 공개하면 아마 새로운 느낌으로 많은 자전거 관광객이 올 것이다"고 조언했다.
문당마을에는 전통 한옥 숙소 '달마당 스테이'가 있다. 문체부가 추진하는 '지역 관광 추진 조직(DMO) 육성' 사업의 주요 성과로 꼽히는 곳이다.
올해로 5년째 지원을 받는 '홍성 DMO'는 관광객 감소와 숙박 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 한옥 숙소를 정비했다. 그 결과 지난해 체류형 관광객 930여 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핫플'이 됐다. 이날도 일찌감치 '만실'이었다.
유 장관은 문당마을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송미령 장관과 만났다.
국내 최초(1994년)로 '오리 농법'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한 문당마을은 농식품부가 농촌과 문화 관광에 특화한 테마 관광 상품을 개발·운영하는 '농촌 크리에이투어'(Creatour) 브랜드 '따르릉 홍성 유기논길' 등 '유기 농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행사를 운영하는 '농촌 체험 휴양 마을'이기도 하다.
두 장관과 신세계 관계자는 이곳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문체부의 '대한민국 문화도시'와 신세계의 '로컬이 신세계', 그리고 농식품부의 '농촌 협약' 등 3개 사업 간 협업 의지를 다졌다.
'농촌 협약'은 농식품부가 지역이 수립한 농촌 공간 계획을 토대로 해당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농촌 정주 여건 개선' '농촌 경제 활력 제고' '지역 공동체 활성화' 등을 위한 사업을 통합 지원하는 제도다. 시군별로 5년간 최대 300억원에 달하는 국비를 지원한다.
문체부와 농식품부는 각 수장의 동반 현장 방문을 계기로 지역 문화 발전과 농촌 관광 활성화를 동시에 완성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업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문화도시'와 '농촌 협약' 사업의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인센티브를 주거나, 양 사업 간 내용을 연계한다. '로컬100'과 '농촌 관광'도 연계해 정책 상승 효과를 높인다.
신세계는 '로컬100'과 '대한민국 문화도시', '농촌 협약' 대상지를 '로컬이 신세계' 특산물 발굴 후보지로 우선 고려한다.
문체부와 농식품부는 지역 음식 재료와 식문화가 '로컬이 신세계' 사업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문체부와 농식품부, 신세계는 이번 협업에 그치지 않고, '가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속해서 힘을 합치기로 뜻을 모았다.
유 장관은 "'대한민국 문화도시'와 '농촌 협약' '로컬이 신세계' 사업은 모두 '지역 활성화'라는 공통 목적을 가진다"고 전제한 뒤, "문체부의 지역 문화·관광 활성화 정책에 농식품부의 농촌 지원 정책, 신세계의 유통망이 힘을 더하면 놀라운 상승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면서 "지방 소멸 시대에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유 문화와 특화한 관광이 중요하다. 적극적인 민관 협업으로 지역의 숨은 매력을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이 지역을 사랑하고, 찾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
송 장관은 "최근 관광 흐름의 변화로 숨은 여행지 발견, 틀을 벗어난 특색있는 여행, 즉흥 여행 등이 주목받고, 독창성 있는 지역 관광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농촌 관광 사업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농업 외에도 농촌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민간 기업 참여가 필요하다. 문체부와도 협력을 강화해 농촌 지역 문화 관광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송 장관과 함께 주형로 대표로부터 문당마을 관련 소개를 듣고, 여러 시설을 둘러봤다. 문당마을에서 오리와 메기 농법으로 생산한 '유기농 쌀'을 주재료로 한 '쌀 피자 만들기' 프로그램도 체험했다.
그런 다음 홍성산 식자재와 지역 문화를 바탕으로 각종 제품을 생산하는 지역 청년 창업자들과 20여 분가량 만났다.
쌀 피자와 로컬 맥주 제품을 나눠 먹으면서 그는 어려운 점, 바라는 것 등 이들이 털어놓는 마음속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고, 장관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일정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유 장관은 송 장관과 함께 인근 산기슭에 터를 잡은 '문당환경마을 환경 교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숲속에 차려진 '로컬 농식품 브랜드 팝업' 부스를 찬찬히 둘러봤다. 전통주, 유기농 쌀빵, 전통 장, 미숫가루, 우리쌀 떡볶이, 우리밀 냉면, 쑥인절미, 쑥콩시루떡, 작두콩차, 여주차, 홍삼 스틱 등 지역 특산물을 주원료로 한 '농촌 융복합 인증 제품'이 저마다 남다른 의미로 발길을 멈춰 세웠다.
실내로 들어와서는 송 장관, 신세계 관계자, 지역 창업자들과 나란히 GS그룹 사내 식당 총괄 매니저인 김민지 영양사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에 참여해 홍성산 식자재를 활용해 '비빔밥' '떡갈비' 등을 만들었다.
비로소 만찬이 시작했다. 애초 예정됐던 오후 6시에서 이미 1시간 가까이 지난 뒤였다. 비빔밥, 떡갈비가 주메뉴였다.
홍성산 식자재가 훌륭해서였을까. 김 영양사의 손맛이 좋아서였을까.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김태흠 도지사를 비롯한 충청남도 주요 인사들도 합류해 식사하는 틈틈이 두 장관에게 도청 소재지인 홍성군 매력을 설파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 무렵까지 빽빽한 일정도 모자라 폭염까지 더해진 탓에 '역대급' 강행군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 장관은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날 홍성행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그는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려는 홍성군 민관의 노력을 치하했다.
"홍성군청 자리에 옛 홍주읍성을 다시금 꾸며놓은 것이 굉장히 좋았다. 광천 김이나 토굴 새우젓은 요즘 방식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전래한 것을 유지하는 것이어서 더욱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특히 새우젓은 '시간 없다'는 이유로 빨리빨리 숙성시키려 할 것도 같은데, 토굴에서 3개월 이상 발효하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훨씬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감히 '귀촌'을 택한 청년 창업자들을 향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도시에서 내려온 청년들이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응원해 주고 싶다."
☞공감언론 뉴시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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