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거기에 있다[포토 다큐]
“나는 저렇게는 못 살아요.” 반려견 탄이와 산책 친구 시루에게 간식을 주던 김신영(가명)씨가 말했다. 신영씨가 말한 ‘저렇게 사는 사람’은 배민지씨다. 민지씨는 신영씨가 아침 산책 때마다 들르는 카페의 주인이다.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한쪽에 자리 잡은 이 카페의 이름은 ‘쓸(SSSSL: Small Slow Sustainable Social Life의 줄임말로, 작지만 천천히 지속 가능한 사회생활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카페에는 11시 5분쯤 강아지 다섯과 사람 다섯이 어김없이 모인다. 때론 더 모이기도 덜 모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섯이 모인다. 비록 전날 밤에도 만나 같이 산책을 한 사이지만 간밤의 강아지 재롱에 대해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대화를 나눈다. 더운 여름날의 끈적한 공기와 다른 푸근한 열기가 그들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다. 자신을 한곳에 오래 머문다는 뜻인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 소개하는 민지씨는 대구에서 29년을 살다가 2018년 서울로 올라와 혁신파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잡지 ‘매거진 쓸’을 만들었다. 그즈음 정문 앞 풀밭에 작은 공방이 지어지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공방이 문을 닫았다. 공방은 문이 닫힌 채 1년 반을 버려져 있었다. 그곳이 눈에 밟힌 민지씨는 공방을 인수해 2021년 카페 ‘쓸’을 차렸다. 민지씨는 한동안 출판사와 쓸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던 2022년 초, “서울시립대가 들어오니 출판사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학생들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한 민지씨는 출판사를 정리하고 카페에 집중했다. 2022년 12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여의도 ‘더현대서울’보다 큰 60층 랜드마크 복합문화쇼핑몰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온다던 시립대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우체국과 장애인 전문 치과 등이 하나둘 사라졌다.
2023년 4월,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민지씨는 카페를 비우라는 서울시의 최후통첩을 받았다. “재판하면 그동안 영업을 더 할 수 있다고 지인이 말했어요. 그 말에 조금이나마 더 카페를 지키며 이곳을 찾아오는 존재들을 맞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민지씨는 서울시와의 명도 소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재판을 준비했다. 서툴렀지만 서류 작성도 직접 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상대는 거대한 도시, ‘특별시’였다. 민지씨는 지난 7월 24일 1심에서 패했다. 그는 패배했다는 사실보다 ‘원고 승’이라는 글에 더 화가 났다. 원고란에 쓰인 것은 서울특별시지만 이는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이기 때문이다. 압박은 민지씨에게 일상이 됐다. 하루가 멀다고 높은 허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영업 철회 전화, 구청 식품위생과의 연락, 변상금 고지서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하루는 누군가 카페 창고 문을 자물쇠로 잠가놓고 가버리기도 했다.
민지씨는 소송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돈도 돈이지만, 버틸 용기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서울시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자가 찾아간 날 민지씨는 “죽을 때까지 여기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공간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며 시작한 싸움이었다”며 “항소를 하면 ‘내가 할 수 있는’의 영역을 넘어 더 큰 싸움이 될 텐데,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읊조리듯 말했다.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를 공연무대로 한 잔치를 열었다. 잔치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춤을 추지’였다. 세 번의 잔치에 약 6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세 번째 잔치를 마친 다음 날, 항소를 고민하던 민지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카페를 지키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여전히 마음을 정하고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혁신파크에 가면 사랑하는 이의 손이나 반려견의 목줄을 잡고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엔 동화에나 나오는 버섯집을 닮은 공간 ‘쓸’과 그 공간을 쏙 닮은 배민지씨가 있다. 그러나 멀지 않은 시점에 ‘그곳에 그런 곳이 있었다’로 바뀔지도 모른다.
사진·글 이준헌 기자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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