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망 무너졌는데 수뇌부는 고소전… 흔들리는 국가 안위 [심층기획]
신상 노출 블랙요원들 귀국길
체계적 철수 실패 땐 추가 유출 위험
軍 “사건 돌발 노출로 배후 추적 난항”
정보 넘긴 군무원 ‘간첩죄’ 적용 유력
휴민트 마비에도 정보사 집안싸움만
사령관·여단장 정면충돌… 하극상 논란
고소장에 군 기밀 암호명 버젓이 노출
고강도 쇄신… 사령관 직무배제 검토
대북 첩보 활동의 핵심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가 만신창이가 됐다.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해외 ‘블랙 요원’의 신상정보 유출로 대북정보 라인에 경고등이 켜졌다. 또 사령관(소장)과 여단장(준장) 간 볼썽사나운 고소전에 하극상 논란이 불거지고, 이 과정에서 민감한 작전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됐다. 특히 유출자 색출을 위한 정보사 전 직원들의 통화목록 제출 지시로 내부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정보사도 국가정보원(국정원)도 방첩사도 난리다. 휴민트가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국가 정보라인 사정에 밝은 한 정부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정보 활동의 핵심은 흩어진 정보를 서로 다른 소스로 체크하며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확인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통신·전자 신호를 수집하는 신호정보(SIGINT·시긴트)와 정찰위성을 통한 영상정보(IMINT·이민트)로 확보한 조각 정보들로 북한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인간정보(HUMINT·휴민트)를 통해 보완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대북 첩보활동의 첨병인 휴민트가 흔들리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정보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3급 기밀 유출 파장은 상당 기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외국에 있던 일부 요원은 활동을 중단하고 급히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는 현지 자산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철수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체계적인 철수를 하지 못하면, 정보의 추가 유출 위험도 커진다. 베트남 전쟁 후반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전황이 다급해지면서 남베트남에 있던 전자전 장비와 감청장비, 운용교범, 암호체계 등을 회수·파기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이 자료들은 북베트남군을 거쳐 옛소련에 넘어갔다. NSA 역사상 가장 큰 정보 실패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사건에서도 뜻하지 않게 정보가 추가 유출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를 토대로 현지 사법기관이 추적에 나설 경우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동선과 신원 정보가 드러날 우려도 있다.
정보사 사령관과 대북 인적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여단장 간 정면충돌과 진흙탕 고소전은 충격적이다. 수도권에 있는 영외 비밀 사무실의 사용 여부를 놓고 충돌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결재판을 던지는 등 인격 모욕적인 폭언이 오고 가면서 사건이 커졌다는 후문이다.
총체적 난국 상황에서 정보 공백 방지, 철수 요원에 대한 처우 등 과제까지 겹친 정보사의 수뇌부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직 관리 부실 책임과 더불어 내부 기밀과 치부가 모두 드러난 정보사를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군 당국이 정보사 수뇌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방부는 사령관에 대한 직무배제를 검토 중이다. 앞서 여단장에 대해선 이미 직무배제 조치했다. 군 관계자는 “수습할 일은 많은데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으면, 조직원은 각자도생하고, 조직의 단결력과 능력은 약해진다”며 “(정보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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