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기름때 지우고 종이비행기 멀리 날게 하는 마법 [콘텐츠의 순간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단연 〈드래곤볼〉이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매번 더 강력한 적을 마주치는데, 그런 적을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면으로 대결하곤 한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다쳐도 끝내 정정당당하게 싸워 상대를 어떻게든 쓰러뜨리고야 만다. 어린 나는 손오공의 지칠 줄 모르는 성장과 압도적인 힘을 동경했다.
〈드래곤볼〉 같은 만화를 흔히 왕도물이라고 부른다. 왕도물의 주인공에게는 대체로 세계 최강자와 같은 목표가 정해져 있고, 그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성장하며 길을 곧게 따라간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목표를 달성한다. 전형적인 성장 서사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서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숙한 초보자로 시작해 성장을 이뤄나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최강자로 등장하고 이후엔 전략과 기술을 조합하여 눈앞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서사가 근래에는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이야기들 사이에 우열은 없다. 성장 서사도, 성장 없는 서사도 그 창작과 소비에서 나름의 시대적 맥락을 가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두 가지 유형의 이야기 모두에 썩 끌리지 않았다. 주인공이 고난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만화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피로해졌다. 처음부터 최강자로 등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통쾌한 전개에 빠르게 빠져들었지만 그만큼 허무감도 크게 찾아왔다. 한쪽이 피나는 노력으로 기어코 달성하는 세계를 보여준다면, 반대편 이야기는 노력만으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린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노력에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다. 우리는 모두 성장의 기회가 희소한 탓에 노력이 꼭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더 노력하지 않았니?’ 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기묘한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주변에서 만화 〈장송의 프리렌〉을 추천해도, 좀처럼 작품을 펼쳐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이 때문이다. 노력과 끈기로 일궈나가는 성장담을 피하고 싶은데, 〈장송의 프리렌〉은 언뜻 기존 왕도물과 유사한 이야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작품의 주요 테마가 ‘성장’인 건 맞지만, 그 성장이 곧 성취나 성공인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장송의 프리렌〉은 여타 작품과 달리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게 아니라, 마왕을 쓰러뜨린 이후 평화를 되찾은 세계에서 떠나는 모험을 그린다. 작품이 시작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용사 힘멜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우리의 모험은 이걸로 끝이야.” 작품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모험이 끝났다니? 독자 입장에선 황당할 수 있지만, 사실 프리렌 일행이 떠나는 모험의 배경은 성취 이후의 세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모험길이 아니라, ’용사 일행이 성취했던 건 무엇인가?’를 되짚어보는 기나긴 회고의 여행길인 셈이다.
모든 혼이 잠든 ‘오레올’을 향해
주인공인 프리렌은 인간보다 훨씬 수명이 긴 엘프 종족의 마법사로, 이미 천년 이상 살았던 시점에 용사 힘멜의 제안으로 모험을 떠난다. 전사 아이젠, 성직자 하이터도 함께다. 이들의 목표는 마왕을 토벌하는 것. 그들은 10년간의 모험 끝에 마왕 토벌에 성공했고, 수도로 금의환향한다. 목표를 달성했는데, 이제 뭘 할까? 하이터는 다시 성직자로 돌아가고, 힘멜은 일거리 구할 궁리를 한다. 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업적을 세웠지만, 각자의 시계를 다시 일상으로 맞춰놓는 것이다. 프리렌은 마법을 수집하기 위해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힘멜을 다시 찾아온다. 힘멜은 젊은 시절의 모습은 간데없고 노인이 된 모습이다. 재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멜은 수명을 다하고 만다.
워낙 오랜 시간을 살아온 탓에 감정이 무뎌진 프리렌은, 힘멜의 죽음을 계기로 조금씩 달라진다. 무엇보다 그는 힘멜이 살아 있던 시절에 그를 더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을 깊이 후회한다. 그래서 프리렌은 다시 모험길에 오른다. 모든 혼이 잠드는 곳, 죽은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알려진 ‘오레올’에서 힘멜을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프리렌은 오레올로 향하며, 힘멜 일행과 떠났던 모험을 복기한다. 마왕을 물리쳤던 용사 파티의 경로이기에 어쩌면 이 길은 영광의 레드카펫이다. 그러나 정작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들에게 힘멜은 세기의 영웅이라기보다 좀 더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마물에게서 마을 사람을 용감하게 구해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소소한 심부름을 거들고 오지랖 넓게 도움을 주던 친근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프리렌의 기억 속에도 힘멜은 아플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죽은 자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상냥한 이로 남아 있다. 정작 힘멜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동상은 때로 찾는 이가 드문 탓에 녹슬어가지만, 모험가였던 한 용사가 마을을 도와준 일화만은 대대로 이어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라도 천년의 세월 앞엔 희미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더라도 천년의 세월 안에 선명히 남기도 한다. 프리렌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아낸 대마법사 제리에는 여태 수없이 많은 제자를 키웠지만, 제자들이 어떤 마법을 좋아했는지 빠짐없이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해낸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했던 것들 말이다. 참고로 프리렌이 가장 좋아하는 마법은 꽃밭을 만드는 마법이다. 곰팡이를 없애는 마법, 냄비의 기름때를 지우는 마법, 종이비행기를 멀리 날게 하는 마법 같은 것들.
이미 마왕을 물리친 전적이 있는 프리렌은 작중에서 실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함으로써 성장한다. 타인에 대한 무감각한 시선을 거두고, 다정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을 타인과 함께함으로써 의미를 찾는 것. 이것이 바로 프리렌의 성장이다.
그간 나는 성장과 성취를 동의어로만 여겼다. 성취해도 또 다른 것을 끊임없이 성취해야 하는 세계가 지겨워서, ‘노오력’이 선행되는 성장 서사도 외면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장송의 프리렌〉은 성취와 다른 결의 성장을 보여준다. 여기에서의 노력은 실력을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이다. 어쩌면 다정함이야말로 무뎌지지 않도록 늘 갈고닦아야 하는 기술 아닐까? 어떤 상황이 닥칠 때마다 프리렌은 힘멜을 떠올린다. 힘멜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러니까, 다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 순간 태도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에 절실한 ‘성장 서사’다.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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