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환상적인 환상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2024. 8. 8.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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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지금 올림픽이 한창인 프랑스 파리에 관계된 병증이 있다.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다 실제로 파리에 가서 환상과는 다른 현실로 인해 받은 충격으로 겪는 정신질환인 '파리 신드롬'이 그것이다. 파리가 무슨 죄가 있겠나. 파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사람들이나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사람들의 동화적 감성의 조화일 것이다. 지금은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가 낭만의 에펠탑을 찾아 파리로 가듯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많다. 그들이 환상을 마주할지 그 환상이 깨질지 또 다른 환상을 품고 돌아갈지 모른다. 또 그들의 환상을 또 다른 환상으로 포장해 이른바 국뽕이 차오르는 콘텐츠들로 환상을 현실로 현실을 환상으로 만들어낸다.

세상은 온갖 환상으로 가득하다. 아니 세상 자체가 환상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분별하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환상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 목숨을 건 사랑, 유년시절을 함께한 애착인형, 차마 버리지 못하는 고장난 물건들. 나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다른 이는 별다른 가치를 못 느끼거나 거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들부터 가족과 집단, 혹은 민족과 나라의 정체성과 고유의 가치들. 그것들은 실체가 없지만 그런 관념들이 실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환상이 환상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그런 환상들에 집착하다 보면 그것이 변하고 깨질 때 큰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환상에 의해 행복하고 환상에 의해 불행해진다. 환상을 좇다 사라진 환상에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이 환상이다.

환상을 좇다 환상처럼 사라지는 것이 삶이다. 모든 것은 나의 환상이고 나는 모두의 환상이다.

뇌세포는 가소성의 특징이 있다. 뇌 지도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고의 습관이 삶을 비관하게 만들고 긍정적인 사고의 습관이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한다. 그 습관을 바꿔나가는 것이 수행이기도 하다. 수행은 출가 수행승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음을 가진 모든 존재가 수행자다. 모든 것이 환상임을 깨닫고 그것에 물들지도, 그것을 싫어하지도 않으며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이른바 삼복더위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가을이 멀지 않음을 통찰하고 삶의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이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한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것을 쓰기만 하면 된다.

한마음 돌이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비로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온갖 기적과 신통한 일을 바라지만 정작 신통한 일은 마음의 변화에서 일어난다.

내가 어떤 환경과 어떠한 처지에 처했을지라도 그것은 세상과 나의 환상적 가치일 뿐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길가의 이름 모를 잡초들이 화려한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고 살아가듯 모든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파리 신드롬'으로 고통받던 일본 사람이 모여서 파리까지 날아가 손수 청소를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어찌 보면 그들의 깨진 환상을 치유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라 하는 이상적인 불국토가 있다. 그곳은 법장비구의 48가지 원력이 성취돼 만들어진 환상의 세계다. 불자는 모두 죽어 그곳에서 나기를 발원한다.

사바세계의 고통 속에서 언젠가는 극락에 가서 태어나기를, 죽음에 임박해서는 극락에 갈 것이라는 위안으로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한다. 환상의 고통을 환상으로 치유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인식의 숲속에 살고 있다. 그 숲에 어떤 나무를 심고 가꿀지 자유로운 상상을 하고 그것을 가꾸며 살아간다. 때로는 메말라 죽는 나무도 생기고 어떤 것은 번성하며 각각의 사연과 의미가 부여된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단단히 굳어 기암괴석이 되고 행복한 순간들은 옹달샘이 돼 초목들을 키운다. 그리곤 또 다른 누군가의 환상이 된다.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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