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목어, 어름치, 지역사회…‘기후대응댐’이 양구에서 앗아갈 것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기후대응’ 앞세워 14곳에 댐 짓는 계획에 포함
군민들, “우리가 왜 저 거대한 물을 이고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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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역에서 발원한 수입천의 상류 부분에 위치해 있어서 물이 1급수로 맑고 수온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 어름치가 살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댐이 건설되면 앞에 보이는 이 풍경이 싹 다 물속에 잠겨버릴 거예요.”
지난 6일 오전 11시께 민간인 통제선을 통과한 뒤 북쪽으로 20분가량을 차로 이동해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소재 두타연 계곡에 도착했다. 휴전 이후 50여년간 민간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2004년 일부 구간이 개방돼 자연 그대로를 보존 중인 곳이다. 하폭이 넓은 평지천 주변을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청록빛의 1급수 폭포수가 굉음과 함께 수심 10m 이상의 폭호로 떨어지고 있었다. 탐방로 곳곳의 배설물이 직접 모습을 보기 어려운 천연기념물 산양의 존재를 증명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물속에 잠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것은 지난달 30일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건설 계획 때문이다. 댐을 짓겠다는 전국 14곳 지역에 이곳 수입천도 포함됐다. 댐이 건설되면 천혜의 자연환경이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날 한겨레와 함께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이렇게 수질 좋고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기 좋은 수온을 가진 곳에 댐을 만든 일은 없다”며 이곳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국제기구와 국내법(산림보호법)이 보호하고 있는 생태보호지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어류전문가 심재환 전 서영대 교수는 “열목어나 어름치 같은 어종은 상류 쪽 차가운 수온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며 “댐이 건설되면 물이 고여 수온이 올라가 이런 물고기들은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열목어와 어름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세계유산, 세계지질공원과 함께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3대 보호지역 가운데 하나다. 지역사회가 적극 참여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곳을 이른다. 서 전문위원은 “댐 건설로 대규모 개발을 하겠다는 것은 애초 정부가 유네스코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해달라는 신청서를 낸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려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처럼 법적으로 보호지역 지정이 될 만큼 생물다양성이 우수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을 만한 구역이어야 하고 지역주민 협의체 등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며 “생물권보전지역의 권고사항에 비춰보면 인위적인 개발을 안 하는 게 더 맞다”고 밝혔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이 살 곳도 위협받을 전망이다. 양구군은 이미 이런 일을 겪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1973년 소양강댐 건설로 수인리, 웅진리, 원리 등이 수몰되는 바람에 1100여명(220가구)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도로가 끊겨 육지 속의 섬으로 전락하여 지역경제 침체, 주민 건강 악화 등 큰 고통을 받아왔다.” 환경부의 기후대응댐 계획이 발표된 뒤 양구군이 “강력히 반대한다”며 밝힌 공식 입장이다. 김기철 더불어민주당 양구군의원은 이날 한겨레에 “방산면은 2001년에도 담성골댐 설치 추진 과정에 있다가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엎어진 지역”이라고 밝혔다. 댐으로 인한 지역소멸을 이미 경험해본 지역에 같은 위기를 다시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산면 주민들은 “왜 이곳에 댐을 지어야 하는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정연재(56)씨는 “여기엔 물 부족 현상도 없고, 인근에 화천댐·평화의댐도 있는데 왜 새로 댐을 짓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왜 저 거대한 물을 불안하게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하는가” 되물었다. “댐을 세운 뒤 폭우로 물이 넘치거나, 북한이 댐을 공격하거나 하면 여기 사람은 다 죽으란 얘기 아닙니까?” 고향인 방산면에서 죽 살아왔다는 김아무개(80)씨는 “또 우리를 희생해서 수도권 사람들에게 물을 대주란 얘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에도 소양강댐과 화천댐 때문에 양구군의 면적과 인구가 크게 줄어든 바 있다”는 것이다. “5년 전 양구에 있던 2사단이 해체되어 지역경제가 가뜩이나 불안한데…”, “안 그래도 비 오면 안개 자욱한 지역인데, 댐 건설 뒤엔 온통 안개로 뒤덮이겠네” 등의 걱정도 나온다.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50대 주민 ㄱ씨는 “현재 내금강 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수입천 두타연을 통해서 가는 길이다. 만약에 여기 댐이 생긴다면 최단거리 지름길이 없어지는 셈”이라며 “여기는 그래도 금강산 가는 옛길이기도 했고 역사성도 있는데 그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남북 분단 이전까지 양구 주민들은 두타연을 통해 금강산까지 걸어 다녔다.
환경부는 수입천댐의 총 저수용량이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 중 가장 큰 규모로 약 1억톤을 저장할 수 있어하루 약 70만명에게 먹는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후보지 중 규모는 가장 크지만, 민간인 출입 통제선과 비무장지대(DMZ)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수몰되는 일반 민간 가옥이 단 한가구도 없으며, 상수원 보호구역 등 규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기철 양구군의원은 “환경부는 수몰 지역에 민가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현장에 4~5채 정도 민가가 있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7일 환경부에 댐 건설에 따라 이곳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에서 해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질의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양구/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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