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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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지정학적 갈등을 거치며 나라마다 경제안보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정책을 쏟아낸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간주하는 관행을 벗어나 공유된 번영과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에 초점을 맞춰 산업정책을 혁신하고 건강한 세계화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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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지정학적 갈등을 거치며 나라마다 경제안보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정책을 쏟아낸다. 경제적 민족주의로 분류되는 이런 흐름은 고립주의, 보호주의, 통상마찰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 혹은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기존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반성과 분노가 자리한다. 당초 트럼프발 무역분쟁과 영국의 브렉시트로 불거졌지만 그 정치적 반대파인 바이든(아마도 해리스도)과 영국 노동당에도 이런 기류가 고스란히 계승됐다.
얼마 전에는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주축이 돼 '베를린 선언'을 내놓았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간주하는 관행을 벗어나 공유된 번영과 안전하고 질 좋은 일자리에 초점을 맞춰 산업정책을 혁신하고 건강한 세계화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선언을 주도한 하버드대학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생산주의'(productivism)라는 프레임으로 모든 지역과 노동력의 전부문에 걸쳐 생산적인 경제적 기회의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미국의 바이드노믹스로 구현된 '현대 공급중시 경제학'(옐런)과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런 행보가 자칫 일국 중심적, 패권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역분쟁이나 환율전쟁과 같은 근린궁핍화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 사이 지정학적 혼란과 대공황 충격에 맞서 몸부림친 케인스의 문제의식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는 자유로운 무역과 자본이동에 기반한 경제적 국제주의가 전쟁을 억제하거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균형적인 거시경제 관리를 통한 '민족적 자족'(national self-sufficiency)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이 결국 2차대전 이후 안정적인 국제질서 재건에 기여했다.
앞서 주목한 로드릭 교수의 고민은 케인스의 이런 접근을 현대화한 것이다. 특히 그는 이미 '세계 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trilemma)'를 제기했다. 국가주권과 민주주의, 또 세계화라는 3가지 미션의 동시충족은 불가능하고 둘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세계화와 국가주권의 결합이 20세기 초 혼란으로 이어진 금본위제가 대표적이다. 반면 국가주권과 민주주의의 결합은 2차대전 이후 국제무역 및 자본이동 제한에 기반한 브레튼우즈 체제였다. 마지막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이른바 세계 연방국가일 텐데 유럽연합의 시도와 좌절에서 보듯이 아직은 꿈에 가깝다.
핵심은 세계화가 국가주권이나 민주주의 중 하나의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세계화를 내팽개칠 수는 없겠지만 자칫 국가주권이나 민주주의의 퇴보를 대가로 할 수 있다는 점에는 진지한 반성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로드릭은 최근 신자유주의의 몰락에 맞서 지정학적, 경제적 안보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반동적인 반면 자체 좋은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회복 등에 기반한 경제의 재균형 노력은 건설적인 대응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제 경제적 민족주의나 보호주의에 대해 그 진위를 좀 가려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장보형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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