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이 몰고 온 美 흥행 돌풍 ‘트위스터스’ 한국에도 상륙

백수진 기자 2024. 8. 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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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박스오피스서 1위 차지… 상업 영화 데뷔한 정이삭 감독
미국 오클라호마주를 향해 거대한 토네이도가 몰려오자, 기상학자 케이트(데이지 에드거 존스·가운데)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토네이도를 소멸시킬 방법을 찾으려 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카데미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2021)에선 미국 남부의 시골 농장에 토네이도가 몰아치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이 살던 낡은 트레일러는 거센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덜컹거리고, 아버지는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가족을 대피시키려 한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45)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이 녹아 있는 장면이다. 미국 아칸소주 농장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네이도를 피해 도망쳤던 그날 밤은 어린 정 감독에게 뿌리 깊은 공포로 각인됐다.

한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 ‘미나리’로 오스카를 사로잡았던 정 감독이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트위스터스’(14일 개봉)로 돌아왔다. 1996년 개봉된 영화 ‘트위스터’의 후속작으로, 재난 영화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토네이도로 친구들을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뉴욕 기상청 연구원 케이트(데이지 에드거 존스)가 토네이도에 맞서기 위해 폭풍 속으로 돌진하는 이야기. 영화는 지난달 미국에서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글로벌 매출 2억7780만 달러(약 3821억원)를 순식간에 벌어들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를 돌고 종착지로 한국을 찾은 정이삭 감독은 7일 기자 간담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며 “관객들이 마법과도 같은 토네이도 현상을 최대한 가까이서 체험하길 바랐다”고 했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거대한 토네이도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정 감독은 토네이도를 공포스러우면서도 경이롭게 묘사했다. 지붕이 뜯겨나가고, 대형 트럭과 간판이 눈앞으로 날아다니는 토네이도의 파괴력이 관객을 압도한다. 정 감독은 실내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 촬영을 고집해 실제 오클라호마주, 캔자스주의 드넓은 평원 위에서 생생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배우들은 바람뿐 아니라 흙과 비, 우박을 온몸으로 맞으며 실감 나는 연기를 펼쳤다.

7일 내한한 정이삭 감독은 “최근 어머니가 미국서 서울로 이사하셨다”며 깜짝 소식을 전했다. 영화엔 ‘대박, 미쳤다!’란 한국어 대사도 나온다. /뉴스1

정 감독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존재를 맞닥뜨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요즘은 모든 세계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축소돼서, 거대한 것을 바라볼 기회가 사라지고 있잖아요. 영화관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존재를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거대한 자연에 매혹돼 토네이도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클라호마주에 사상 최대의 토네이도가 상륙한다는 예보가 나오자, 토네이도를 추적하는 무리가 몰려온다. 폭풍을 소멸시키려는 연구원 케이트와 토네이도를 따라다니며 기행을 벌이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글렌 파월)가 티격태격하며 토네이도를 쫓는다. 케이트는 토네이도에 휘말리며 그동안 피해왔던 두려움에 직면한다. 정 감독은 “삶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 통제력을 잃고,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토네이도를 경험해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누구나 이들에게 이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동 제작을 맡았다. 정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1990년대 스필버그 영화들을 보면서 공부했다”고 존경을 표했다. 그는 ‘미나리’ 이후 디즈니+ 시리즈 ‘만달로리안’의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 특수효과 기술도 익혔다. 제작사 루커스필름의 사장이 정 감독을 눈여겨보고 ‘트위스터스’ 제작자에게 그를 추천하면서 메가폰을 잡게 됐다. 함께 내한한 프로듀서 애슐리 J. 샌드버그는 “미국 남부 지역을 이해하고, 토네이도를 경험해본 감독을 찾고 있었다”면서 “그가 적임자였다는 게 결과로 검증됐다”고 했다.

섬세한 독립영화로 주목을 받았던 정 감독이 차기작으로 제작비 2억달러(약 2750억원)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연출을 맡으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정 감독은 블록버스터에서도 연출력을 증명하며 성공적인 상업 영화 데뷔를 치렀다. 그는 “첫 블록버스터 연출이 두렵기도 했지만, 피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 저에게 성장할 기회와 영감을 줬죠. 차기작은 ‘미나리’에 가까울지, ‘트위스터스’에 가까울지 알 수 없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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