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활로 세계시장 ‘명중’… 올림픽 또 다른 금메달리스트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장외(場外)에서 독보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딴 ‘종목’이 숨어 있다. 바로 ‘메이드 인 코리아’ 활. 사상 처음으로 양궁 5개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 메달리스트의 손에는 물론, 파리 올림픽 양궁에 출전한 53국 128명 중 38국 78명이 한국산 활을 썼다. 30개의 금·은·동 메달 중 18개가 한국산 활을 사용한 이들의 몫이었다. 이 중에서도 경기 안성에 있는 중소 업체 ‘윈엔윈’이 만든 ‘위아위스’ 활이 가장 많았다. 참가 선수 중 63명, 한국 남녀 국가대표팀 6명 중 4명이 이 활을 들고 5개 종목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를 합작했다. 지난 6일 경기 안성에 있는 윈엔윈 본사에서 박경래(68) 대표를 만나 국산 활로 세계 양궁 시장을 휩쓴 비결을 들어봤다.
◇‘메이드 인 코리아’ 활의 위력
고교 때부터 활을 잡았던 박 대표는 대학(동아대 체육학)에 입학한 1975년 우리나라 첫 양궁 국가대표로 발탁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1982년부터는 남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숨은 공신 역할도 했다. 그즈음 그는 연봉 1억원을 포기하고 돌연 사표를 던졌다. 그는 ‘활을 쏘는 양궁이 세계 1위라면 활을 만드는 것도 1위를 못 할 게 없다’는 생각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국 궁사들은 모두 미국 호이트나 일본 야마하 활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까지 끌어모은 4억5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나이키도 육상 선수 출신이 창업했듯 스포츠용품은 스포츠인이 개발해야 선수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활 만들기에 나섰다.
특히 그가 개발에 주력했던 건 활의 손잡이 양 끝에 달린 날개였다. 당시 호이트와 야마하 활은 시위를 당길 때마다 균형이 맞지 않아 부러지고 금이 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불만을 알고 있던 박 대표는 앞서 활 제조업을 하다가 포기했던 ‘연안정밀’이란 중소 업체의 기술자 2명을 영입, 후배 양궁 선수 5명과 힘을 모아 연구를 시작했다. 약 1년간 연구 끝에 활을 쏴도 날개가 손상되지 않는 견고한 활을 만들어 냈다.
소재도 튼튼해야 했다. 당시에는 선수들이 활이 손상될 때를 대비해 새 활을 서너 개씩 더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활을 새로 바꾸면 금방 손에 익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박 대표는 외부 충격에 강한 소재를 찾아 일본 도레이, 미국 고든카본 등을 찾아다녔다. 그 중 미국 업체가 소개해준 새로운 소재로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다. 자동차 표면에 쓰는 재료보다 질 좋은 페인트와 접착제까지 구하면서 윈엔윈은 품질을 압도적으로 높였다.
◇30국 뻗어가는 국산 활
박 대표가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 활은 선수들이 쓰는 경기용 활을 주력으로 세계시장까지 뚫었다. 유럽의 양궁 전문 잡지를 뒤져가며 업체 수십 곳에 연락을 돌린 끝에, 네덜란드에 처음으로 수출을 했다. 이어 미국 양궁 장비 회사 PSE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까지 맡으면서 1998년 연 매출은 6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1999년 프랑스 리옹 세계선수권대회 무대에서는 윈엔윈의 활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당시 출전 선수 400명 가운데 윈엔윈 활을 쓴 사람은 우리나라의 이은경∙홍성칠, 두 선수뿐이었는데 이들이 남녀 개인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이어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오교문∙윤미진 선수가 이 활로 금메달을 따자 위아위스는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섰다. 그 후로 활 주문이 한 해 동안 1만 개씩 밀려들면서 주문을 감당 못 해 취소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러던 이듬해에는 일본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던 야마하 양궁 사업부를 인수하면서다. 양궁 제조업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야마하만 고집한 일본 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윈엔윈이 만든 활만 쓰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0국에 활을 수출하면서 윈엔윈은 지난해 수출액만 1227만달러(약 169억원)를 기록했다. 2015년부터는 경기용 사이클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스위스 선수가 위아위스 자전거로 사이클 부문에서 처음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박 대표는 “우리 선수들이 양궁은 물론 사이클 부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앞으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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